[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오래 품고 있던 이야기가 품을 떠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마’에 실어 보낸 이해영 감독의 마음은 단순히 1980년대를 재현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애마’로 세상 모든, 버티고 견디는 중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한 이해영 감독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감독 이해영)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애마’는 이해영 감독이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이야기였다. 데뷔작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낸 뒤, 그러니 약 20년 전에 태동했던 이야기란다. ‘애마부인’이라는 우리나라 대표 성애영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이를 소비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단다. 이해영 감독은 “모두가 욕망하면서 동시에 죄의식을 갖고 있는 지점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애마’의 이야기는 2시간짜리 영화에 모두 담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이해영 감독은 일단 시놉시스 형태로 정리해 둔 뒤 20년을 묻어뒀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흐른 뒤, 변화하는 시대 속에 좀 더 유연해진 이해영 감독은 ‘애마’를 다시 꺼냈다. 그렇게 ‘애마’는 6부작짜리 시리즈로 새로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치게 됐다.

1980년대, 낭만과 야만의 시대를 ‘애마부인’이라는 상직적 영화와 함께 담으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해영 감독은 “당시 대한민국은 군부독재의 엄혹함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통제를 받았고, 제약도 많았다. 동시에 한국 영화가 성애 영화를 필두로 상업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음악이나 스포츠 프로야구가 태동을 했고, 그러면서 문화적인 격변기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해영 감독은 “동시에 검열이나 심의가 강력해서 표현의 자유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시절이어서 아이러니한 시대였다. 익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야만적인 시대였더라”면서 “여성혐오적인 분위기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팽배했고. 언어폭력부터 너무나 야만적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알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이건 놀라울 정도로 극한의 시대였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라고 했다.

폭력과 억압으로 가득 찬 그 시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맞짱’ 뜨는 희란과 주애의 서사에 영감을 준 인물이 있다. 바로 ‘애마부인’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안소영이다. 안소영의 다큐멘터리는 이해영 감독에게 큰 영감을 줬고, 안소영의 발자취를 희란과 주애의 삶에 녹아낼 수 있었다. 이에 이해영 감독은 어떤 형식으로든 안소영을 ‘애마’에 ‘모시고’ 싶었다고 했다. 이해영 감독은 “뭔가 의미도 있고 길지 않으면서 임팩트도 있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촬영 직전까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대종상 장면에 나오시는 걸로 했는데, 이야기 속에서 희란과 주애의 긴 여정을 마무리해 주는 느낌도 있지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큰 매개의 역할을 해주신 것 같다”면서 “제가 작가, 감독으로서 실제 그 당시 ‘애마부인’을 통해서 그 삶을 견디고 버텨오셨던 선배님의 제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대본을 쓰고, 6부작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가장 난관이었던 건 노출 수위였다. 이해영 감독은 “노출 수위에 대해 수개월 동안 고민했다”면서 “그 당시 성애 영화가 장려됐지만, 실제론 성애적인 표현은 불가능했다. ‘애마부인’을 보면 직접적인 노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해영 감독은 실제 ‘애마부인’ 보다 노출의 수위를 더 높게 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에 다다랐다고 했다. 이해영 감독은 “‘애마부인’ 수위와 맞춰야겠다는 게 저의 선이었다”면서 “‘지금 봤더니 노출이 없어’라고 실망을 하셨다면 죄송하기도 하고 유감스럽지만, 행여 시청자 분들 중에 ‘애마부인’보다 안 야하잖아 하면 정정하고 싶다. 그것만큼 안 야하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다른 난관은 야만의 시대를 어느 정도 묘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야만의 묘사 수위를 높이자니 시청자들의 불편함과 거부감이 높아질 테고, 그렇다고 낮추자니 야만성에 저 행하고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을 잃을 것 같은 딜레마에 빠졌단다.

견딜 수 있는 불편함의 수위를 만들기 위해 택한 이해영 감독의 여러 방법 중 하나는 배우들의 힘이었다. 불편함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를 아주 잘하면서, 또 선한 이미지가 있는 배우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 예가 바로 신성 영화사 대표 구중호 역의 진선규와 남자 기자로 특별출연한 박해준이다. 진선규와 박해준은 희란과 주애가 견뎌야 했던 야만 그 자체로서 실감 나는 연기를 하면서도, 배우 본연의 선한 이미지로 그 불쾌함을 완충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진선규, 박해준뿐만 아니라 이해영 감독은 캐릭터와 잘 맞는 배우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주애 캐스팅을 위해 2000명 넘게 오디션을 진행했고, 기석과 영배 역할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름값 다 떼고, 진짜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찾는 것이 이해영 감독에게는 최우선의 과제였다.

가장 애를 먹었던 캐스팅은 당연 주애였다. 2000명을 넘게 만났는데, 주애를 찾지도 못했을뿐더러 스스로가 어떤 주애를 원하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치 주애가 살아 걸어오는 느낌을 주는 방효린을 만났으니 눈물이 날 만도 했다. 이해영 감독은 “저는 제가 처음에 어떤 주애를 원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가 방효린을 만나고 나서 ‘이런 주애를 원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방효린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이어 이해영 감독은 “첫눈에 육감적이고 섹시한 느낌이 없었으면 했다. 또 주애라는 인물 자체가 설득력과 공감, 응원하는 마음이 들어야 했다”면서 “주애가 희란에게 ‘남자 빤스 다섯 장을 빨면서 늙기 싫었다’고 말하지 않나. 그 대사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방효린은 이해영 감독이 찾던 주애 그 자체였다. 그래서 방효린이 오디션에서 그 대사를 연기했을 때, 절로 감정 이입이 돼 눈물이 났다는 이해영 감독이다.

주애만큼 중요했던 캐릭터인 희란은 이하늬를 만나 압도적인 캐릭터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해영 감독은 “시나리오 쓸 때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모든 배우들을 레퍼런스 삼아서 녹여냈다. 그래서 보시는 분들이 어떤 배우 같아 제각각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느낌의 캐릭터였다”면서 “그런 희란을 이하늬가 하면서 ‘이하늬스러움’을 만들어냈다”라고 이하늬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해영 감독은 “처음에 이하늬와 이야기했던 건 희란은 스크린 안에 있건 사람들 앞에 있건 혼자 있건 손톱 끝까지 연예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배우 같음이 이 배우의 진심 같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큰 도전이자 모험 같은 느낌이었다. 이하늬 배우가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초반에는 희란이 낯설 수도 있는데 압도적인 연기여서 무도가 다 공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맷집으로 버티고, 악으로도 깡으로도 버티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언젠가 K.O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근데 그냥 매일 하루씩 싸우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라고 생각하면 막상 두려울 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아직 링 위에 함께 있어요.”

엔딩에서 주애가 일본 토크쇼에서 희란에게, 아니 무언가를 버티고 견뎌야 하는 모든 여성에게 건네는 듯한 대사는 이해영 감독이 ‘애마’를 만든 이유다. 이해영 감독은 “그 대사도 안소영 선배님의 다큐멘터리에서 받았던 영감이었다. 정말 치열한 싸움이었고, 매번 링 위에 올라가서 누구와 스파링 하는 기분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감을 토대로 응원과 지치지 말자는,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대사를 썼다”라고 했다.

‘애마’ 공개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나뉘었다. 혹자는 생각보다 낮은 노출 수위에 실망하고, 또 누구는 희란과 주애의 이야기를 그저 남 이야기라며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반대에 있는 누군가는 희란과 주애에게서 앞으로의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했다. 즉 ‘애마’라는 제목과 소재가 주는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감상은 천차만별로 나뉘었다.

이해영 감독은 이에 대해 “여성 연대와 성애영화를 찍는 이야기가 충돌하는 설정이다. 초반부에는 ‘왜 이렇게 저속한 말이 많이 나와?’라고 느끼실 수 있는데, 80년대가 실제로 그런 시대였다. 또 그런 묘사가 있어야 후반부 이야기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가볍게 코미디라고 여겨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해영 감독은 “조금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면 뒤에 이하늬가 훌륭한 걸 말아드린다”라고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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