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분명 연기라는 걸 아는데 한 대 쥐어박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데, 반대로 이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는 건 배우 진선규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부분이 진선규가 좋은 배우인 이유다.

지난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감독 이해영)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진선규는 극 중 신성영화사 대표 구중호를 연기했다.

돈 벌기 위해서라면 여자 배우 착취도 마다하지 않는다. 감독의 예술성? 그딴 것은 없고, 그저 ‘꼴리기만’ 하면 된다. 권력에 기생하기 위해서라면, 여자 배우들을 상납하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구중호만 놓고 보면 진선규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 만날 때마다 선한 기운으로 마치 힐링하는 기분을 선사하는 진선규가 구중호를 연기했다니, 처음 ‘애마’를 봤을 때는 불쾌와 혼란이 오고 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진선규가 구중호를 연기해서, 배우 자체의 선함이 캐릭터의 불쾌함을 어느 정도 중화 시켰기 때문에 끝까지 ‘애마’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생생하게 캐릭터를 연기한 진선규가 조금 얄밉기도 했다.

그 얄미움은 진선규가 구중호를 ‘강약약강’의 캐릭터, 욕망에만 충실한 인물로 그리는데 집중한 결과였다. 진선규는 “처음에 감독님이 이야기했던 구중호는 징그럽고, 짜증 나고, 비열하고, 그런데 섹시하기도 하고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뒤에 건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멋있고, 섹시한 건 진선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구중호를 이루는 여러 내면들을 구현하는 건, 진선규가 너무나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선규는 “구준호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모습이 있었으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이고, 욕심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비굴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구중호를 연기하기 위해 진선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자신에게는 한 1% 정도 있을 법한 구중호의 모습들을 꺼내 100% 확장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했다. 진선규는 “사람한테는 그런 모습들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로 꺼낼 때 그 부분을 확장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확장하는 재미는 진선규가 연기하는 힘이기도 했다. 진선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나. 저한테는 연기하는 공간이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실제적으로 저에게 그런 모습이 없지는 않을 거다. 그런 부분을 꺼냈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구중호에게 ‘경상도 사투리’ 설정을 넣은 것은 진선규의 ‘킥’이었다.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의 이유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사투리 설정을 추가하자고 먼저 제안했단다. 지금보다 더 엄혹했던 시절,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혈혈단신으로 성공하려면 열정 그 이상의 독기가 필요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이에 대해 진선균느 “대본상으로는 그냥 표준어였다. 그래서 사투리를 입힘으로써 배역이 가지는 타당성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사투리 외에도 다양한 설정들을 녹여내 권력욕과 야욕을 가진 구중호를 만들어갔다고 했다.

구중호의 비주얼은 의상과 분장의 힘을 받았다. 매일 촬영 전, 신부화장(?)에 버금가는 분장을 받았고, 진짜 구중호가 입을 법한 옷들을 입으니 저절로 구중호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진선규는 “의상과 분장의 힘이 엄청 강하다고 생각한다. 의상과 분장 팀에서 옷을 입혀주고 얼굴을 만들어줬을 때 뭔가 모를 가면을 너무 잘 쓴 느낌이었다. 그 가면 속에서 너무 자유로웠다. 연기할 때 너무 재밌었다”면서 “안 될 것 같은 걸 의상, 분장 팀이 만들어줬고 나머지는 캐릭터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상상해서 했다”라고 했다.

의상과 분장뿐만 아니라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도 진선규가 현장에서 ‘구중호’로서 있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진선규는 “같이하고 있는 배우들도 서로서로 연기를 잘하게끔 만들어줬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선규는 “감독님도 애매한 디렉팅이 아니라 ‘구중호는 비열하고 악랄한 사람인데 섹시하고 뭔가 그런 느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해주셨다”라고 이해영 감독에 대한 감사도 전했다..

특히 이하늬와의 재회는 진선규에게 ‘짜릿한’ 경험이었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다. ‘애마’에서는 벗기겠다는 제작사 대표와 벗지 않겠다는 배우로 만나 앙숙 그 이상의 ‘혐관’을 연기했다. 이에 대해 진선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연기를 하다 보니까 재밌었다”면서 “대사로는 서로에게 나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티키타카가 좋았다. 한두 번 정도 컷 하고 나서 기립박수가 나왔다. 그게 참 짜릿했다”라고 했다.

‘애마’는 진선규에게 또 다른 자극으로 남았다. 방효린, 이소희 등 신인 배우들과 했던 작업은 진선규가 늘 품고 있는 좋은 연기,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건드렸다. 진선규는 “어린 친구들이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배우고 싶고, 함께 연기하고 싶다”면서 “그들에게 좋은 선배, 좋은 꼰대이고 싶다. 그들의 생각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라고 했다.

수줍기만 했던 자신 보다 더 과감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연기하는 신인 배우들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다는 진선규다. 그들의 방식에 나쁜 꼰대처럼 ‘왜 저렇게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진선규는 분명 좋은 선배이자 좋은 꼰대, 나아가 좋은 배우였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