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ㅇ난감' 이희준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 [인터뷰]
2024. 02.23(금) 09:00
살인자ㅇ난감 최우식
살인자ㅇ난감 최우식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자신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것, 배우 이희준이 좋아하는 연기를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었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연출 이창희)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과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희준은 형사였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 자신만의 신념으로 살인을 이어나가는 송촌을 연기했다.

‘살인자ㅇ난감’에서 송촌은 60대 노인 설정이다. 이로 인해 이희준은 처음 출연 제안이 왔을 때 의문이 앞섰다고 했다. 이희준은 “이 역할이 왜 저에게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황당했다”면서도 “대본이 너무 재밌는데 할아버지 역할이라고 해서 황당했지만 그다음엔 신났다”라고 했다. 특히 이희준은 감독이 자신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출연 제안을 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송촌이 되기 위해 이희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찰이었다. 서울 익선동 등 노인들이 많은 지역을 찾아가 송촌의 일부를 찾아다녔다. 말투부터 걸음걸이 등을 수시로 관찰하며 송촌을 만들어갔다. 상상으로만은 알 수 없었던 노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직접 관찰하고, 포착하면서 디테일을 쌓아나갔다. 연기하는 것도 재밌지만, 이렇게 인물을 만들기 위해 관찰하는 과정부터가 자신에게는 ‘놀이’의 시작이라는 이희준이다.

관찰로 송촌의 기초를 어느 정도 만든 다음에는 상상의 영역이었다. 송촌은 왜 이탕을 만나고 싶어 할까. 송촌은 왜 이렇게 삐뚤어졌을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송촌을 찾아나가는 여행을 즐겁게 이어나갔다.

특히 이희준은 송촌이 왜 그렇게 이탕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자신의 과거 모습에서 찾았다. 이희준은 “30대 초반에 연극할 때 대학로에서 누가 연기를 잘한다고 하면 얼마나 잘하는지 몰래 가서 구경하곤 했다. 송촌도 그런 마음 아닐까 싶다. 이탕은 나하고는 다르게 악인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노빈(김요한)에게 들었을 때 얼마나 질투 났을까. 노빈이 날 두고 바람을 핀 거 거 아닌가.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이해를 해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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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가 아닌 진짜 송촌을 만들기 위해 관찰과 상상으로 부단히 노력했던 이희준은 촬영장에서도 진짜이길 바랐다. 이에 이희준은 “첫 촬영할 때 감독님에게 혹시라도 임의적으로 제가 할아버지인 척한다거나 그런 부분이 있으면 꼭 이야기해달라고 했다”면서 “임의적인 척하고 싶지 않아서 경계했다”고 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일까. ‘살인자ㅇ난감’ 속 송촌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무서울 정도다. 이희준이라고 단번에 알기 힘들 정도로 노인 분장을 한 이희준은 정말로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군다.

그렇지만 이희준은 송촌을 빌런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 적이 없다. 이희준은 “송촌의 광기를 생각하고 연기한 적이 없다. 그만의 삶이 있는데, 작품에서 다 안보여진 것뿐이다. 기능상 빌런으로서 해줘야 하는 것들을 확실히 해줘야 했지만, 송촌을 악당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 적은 없다”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송촌이 단순한 빌런이 아닌 비틀린 신념을 가지고 살인을 있어나가는 복합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연기는 가짜지만, 배우는 진짜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을 때 몰입감은 배가 된다. 그렇지만 여기엔 부작용이 따른다. 작품 속 모든 상황들을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아낸 여파는 촬영이 끝난 뒤에 고스란히 배우에게 남는다. 이희준도 마찬가지였다. ‘살인자ㅇ난감’을 촬영하면서 아이와 놀아주던 중 아이가 찍은 사진 속 자신의 눈빛이 살인자와 비슷했다고. 그만큼 이희준에게 송촌으로 살았던 시간들이 쌓여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남겼다.

배우에겐 자가치유를 할 수 있는 수단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이희준은 8년째 백팔배를 하고 있다. 백팔배를 하며 자신을 다독이며 캐릭터들의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이희준은 “저도 캐릭터에 물드는 편이라 계속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명상과 치료를 해주면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자가치유로 ‘이건 허구다. 이런 걸 이해하려 애썼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배우들에게 스스로 위안을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꼭 권하고 싶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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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희준도 처음부터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성향이었다. 늘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희준은 동시에 과거 네 개의 작품을 병행했다. 자신의 한계를 몰랐기 때문에 호기롭게 모든 작품을 소화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결국 드라마 촬영이 딜레이 되면서 연극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정신없이 준비하고 무대에 올랐고, 그날 공연 중에 과호흡이 와서 대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단다. 그날의 실수로 끊임없이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고, 이후 4년 동안 이희준은 스스로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러던 중 이희준은 연기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찾았다. 그곳에서 이희준은 “배역의 마음에 공감하는 게 배우인데 더듬을까 봐 겁나는 배우다. 내가 되고 싶은 배우랑 지금 내 모습의 간극이 커서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연기를 너무 좋아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절박하게 물었다. 이에 법륜스님은 “그렇게 당황하는 신에 더듬으면 그 배역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하고 더듬으면 안 되나”라고 답했다.

그 답에 4년 동안 투명한 감옥에 갇혀있다가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는 이희준은 그 기분을 잊을까 봐 너무 무서워 그날 밤 내내 글을 써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공황장애 남자의 하루를 그린 ‘병훈의 하루’였다.

지금도 때때로 공황장애가 올 때가 있지만, 이제 이희준은 안다. 스스로 투명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을. 이희준은 “공황장애는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오지만, 구석에 가서 ‘네 마음 알아 희준아.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넘어져도 돼’라고 스스로를 잘 달랜다. 어떨 때는 10초 만에 바람처럼 갈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오래 머물 때도 있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친구가 됐다. 물론 그렇게 반가운 친구는 아니다”라며 공황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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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좋아하는 연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희준은 올해 다양한 연기 활동을 이어나간다. 올해 초부터 넷플릭스 ‘황야’ ‘살인자ㅇ난감’으로 글로벌 시청자들과 만났고, 3월부터 상연되는 연극 ‘그때도 오늘’로 관객과 가깝게 만날 예정이다.

쉴 틈 없는 스케줄이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전혀 힘들지 않단다. 몸이 피곤하긴 하지만 정말 재밌다는 이희준은 마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와 같이 웃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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