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홍준 기자] 최근 멜로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되고 있지만, 극심한 흥행 부진을 겪고 있다. 오늘(24일) 개봉되는 ‘순정’ 역시 흥행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순정’(감독 이은희)은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도착한 23년 전 과거에서 온 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애틋한 첫사랑과 다섯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영화다.

‘순정’은 개봉 당일인 24일 오후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7.6%의 실시간 예매율로 5위에 머물고 있다. 다양성영화로 분류되는 ‘귀향’(27.4%)과 개봉 2주차에 접어든 ‘데드풀’(15.8%), ‘주토피아’(11.4%), ‘동주’(10.4%)에도 밀리는 수치다. 탄탄한 팬덤과 검증된 연기력을 갖춘 도경수, 김소현이 주연을 맡은 것에 비하면 무척 저조한 사전 관심도다.


최근 극장가에서 멜로 장르는 침체를 겪고 있다. 영진위 연도별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된 멜로 영화 중 전체 순위 30위권에 오른 작품은 단 한편도 없다. 멜로 영화로서는 유일하게 200만 관객을 불러모은 ‘뷰티 인사이드’(205만명)가 31위를 기록했다. ‘오늘의 연애’(189만명, 31위), ‘쎄시봉’(171만명, 37위), ‘장수상회’(116만, 43위)가 뒤를 이었다. ‘위험한 상견례2’(47만명)나 ‘연애의 맛’(21만명), ‘은밀한 유혹’(14만명) 등은 50위권 밖이었다.

연말부터 연달아 개봉되기 시작한 5편의 멜로 작품 역시 100만 관객을 넘은 작품은 없었다. 12월 30일 개봉된 ‘조선마술사’는 유승호의 군 전역 후 복귀작이라는 점 등으로 주목 받았지만, 6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달 개봉된 유연석 문채원 주연의 ‘그날의 분위기’는 6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정우성이 직접 제작에 나선 ‘나를 잊지 말아요’는 42만명, 대학로 메가 히트 연극을 원작으로 제작된 ‘극적인 하룻밤’의 경우도 32만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멜로의 부진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다. 2012년까지만 해도 박스오피스 50위권 안에서 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늑대소년’(665만명), ‘내 아내의 모든 것’(459만명), ‘건축학개론’(411만명)을 비롯해 8편이나 됐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2편으로 줄었고, 2014년에도 4편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메이저 제작사나 흥행 배우들은 해당 장르를 기피하게 됐고, 제작 편수도 부쩍 줄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인은 ‘잘 만든’ 작품이 없어서다. 소재만 조금씩 다를 뿐 개봉되고 있는 작품들의 플롯이나 주제 등이 천편일률적이어서 결과적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순정’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과 친구들과의 풋풋한 추억 같은 것들은 이미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끊임없이 동어 반복된 설정이다. 1991년을 시대 배경으로, 올드팝과 가요 등을 끌어온 것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영화 ‘써니’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무뚝뚝한 일편단심 순정남 범실, 첫사랑의 아이콘 수옥, 우직한 남자 아이 산돌, 넉살 좋은 개덕, 말괄량이 길자 등 캐릭터도 새로운 것 없이 진부하다. 이들의 갈등과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 역시 익숙하게 전개된다.

거의 실시간 형태로 시청자들의 기호를 반영해 기획-제작-소비되는 TV 드라마 역시 식상한 작품들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익숙한 소재를 익숙하게 연출한 ‘순정’의 기획은 다소 안일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적은 수지만, 웰메이드 멜로 영화들은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뷰티 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외국인까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인이라는 독특한 소재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결합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장성기라는 전무후무한 카사노바 캐릭터로, ‘건축학개론’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관객들을 불러 모은 사례다. ‘러브 액츄얼리’나 ‘이터널 선샤인’ 등 재개봉 영화들이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을 보더라도 잘 만든 멜로에 대한 관객들의 수요는 꾸준하다.

멜로 영화에도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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