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왕 김일, 국민을 위해 희망과 기쁨을 준 영웅 (서프라이즈)
2013. 11.24(일) 12:11
김일 박치기 왕
김일 박치기 왕
[티브이데일리 조해진 기자] 박치기왕 김일의 일대기가 소개됐다.

24일 오전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박치기 왕 김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했던 김일은 전남 고흥의 섬 출신으로 역도산의 제자가 되겠다며 일본 밀항선을 타고 역도산을 찾아갔다.

역도산을 만나 제자가 된 김일은 프로레슬러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역도산은 김일에게 계속해서 박치기 훈련만을 시켰다. 유리로 된 재떨이가 깨지지 않으면 김일의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이는 김일에게 프로레슬러로서 특기가 없다고 생각한 역도산이 당시 유행하던 평양 박치기를 김일의 트레이드 마크로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고된 수련 끝에 박치기는 김일의 상징이 됐고, 경기 역시 승승장구하며 국민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 이후 이어진 가난과 지독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던 때였다. 이 때 김일의 승전보는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됐던 것.

그러나 높아진 인기만큼이나 경기 출전 횟수가 늘어나면서 박치기를 할 수록 김일에게 가중되는 고통도 커졌다. 숱한 경기로 머리가 성할 날이 없었던 것. 전성기 때 무려 130kg의 거구였던 김일이 자신의 체중을 모두 실어 박치기를 하면 본인에게도 두 배 이상의 충격이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일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자신의 박치기 기술을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국민들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

하지만 수 많은 박치기로 인해 결국 김일은 환청과 환각증세까지 보였다. 김일은 박치기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관중들은 그의 새로운 기술에 호응하지 않았고 박치기를 요구했다.

결국 김일은 다시 박치기로 경기를 치렀고, 30여 년의 선수 시절동안 총 3000여 경기에서 무려 2만 번에 달하는 박치기 기술을 보여줬다. 결국 박치기의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끝에 사망했지만 김일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박치기 왕'으로 남았다.

[티브이데일리 조해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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