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단정하고 맑은 얼굴 뒤에 숨겨진 서늘한 살의가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생애 첫 악역 도전이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룹 엑소 겸 배우 도경수가 ‘조각도시’에서 살인을 게임처럼 즐기는 순수악 요한을 완벽하게 빚어냈다.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며 희열을 느꼈다는 그에게서 악역은 부담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확장이었다.

지난 3일 종영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연출 박신우)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지창욱)이 어느 날 억울하게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모든 것은 요한(도경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향한 복수를 실행하는 액션 드라마로, 도경수는 극 중 요한을 연기했다.

단정하고 앳된 얼굴로 악역이라니. 도경수의 ‘조각도시’ 출연 소식에 대부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랬을 터다.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엑소와 연기, 예능 활동을 하면서 쌓인 도경수의 이미지는 악역과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까란 우려의 목소리나 다름없다.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도경수는 또랑또랑한 눈으로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안 해본 걸 한다는 건,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것. 도경수도 자신의 얼굴로 어떻게 악인을 그려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조각도시’를 준비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참고하지 않고, 오롯이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요한을 만들어나갔다.

요한에게는 고위층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각’하는 일이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다. 자신의 설계대로 사람을 죽이고, 또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즐기는, 어떻게 보면 순수악이나 다름없다. 전형적인 악인과 다르게 독보적인 요한의 캐릭터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되려 도경수의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미소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도경수 역시 요한이 주제만 다를 뿐이지 어린아이처럼 살인과 ‘조각’을 할 때 좋아하는 모습을 잘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도경수는 이에 대해 “요한은 사람을 사용해서 죽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먹는 거를 좋아해서 행복해하는 것처럼, 요한이는 설계를 완벽하게 해서 아무런 티끌 없이 살인을 하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의 인생을 ‘조각’하고, 순수하게 웃는 낯으로 사람을 죽이는 요한이를 연기하며 도경수는 묘한 쾌감까지 느꼈단다. 물론 요한이처럼 그 행위를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거리낄 것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희열이었다. 도경수는 “평소에 그렇게까지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라는 것이 별로 없지 않나. 요한이를 통해서 그런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희열이 있었다. 평소에는 누르고 참고 이런 것들이 있었다면 요한이를 통해서 악을 지르고 그런 거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던 그런 게 있다”라고 말했다.

도경수의 악역 연기만큼이나 걱정을 샀던 부분이 있다. 바로 절친인 배우 이광수와 함께 출연한다는 점이었다. 이광수는 극 중 요한에게 살인 뒤처리를 맡기는 또 다른 빌런 도경을 연기했다. 둘 다 악역인데,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아니라 친분이 먼저 보인다면 큰 낭패였다. 도경수도 걱정한 부분이다. 도경수는 “광수 형이랑 너무 친한 사이다 보니까 연기할 때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됐다”라고 했다.

그 고민은 기우였다. 도경에 오롯이 집중한 이광수 덕분에 도경수도 요한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편한 사이이다 보니 애드리브도 서로를 믿고 더 자연스럽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며, 도경수는 이광수의 눈을 봐도 웃지 않고 더 몰입했다. 특히 관제탑 신은 서로 어떻게 연기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고. 그렇지만 도경수는 이광수가 유연하게 자신의 연기를 받아줄 거라 믿고, 또 이광수의 연기를 상상하며 마음껏 연기했다고 했다.

이광수만큼이나 태중 역의 지창욱과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태중이 요한을 추적하다가 후반부에서야 마주치는 이야기 구조 때문에 두 사람이 촬영장에서 만난 건 다섯 번도 채 안 됐단다. 그래서 도경수는 지창욱을 믿고 요한의 톤을 설정하고 연기했다고 했다. 도경수는 “창욱이 형이랑 신뢰가 다져진 느낌이었다. 창욱이 형이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연기했다”라고 했다. 다만 주로 혼자서 촬영하는 장면들이 많아 지창욱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 배우들과 눈을 마주치고 연기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조각도시’ 공개 이후 누구보다 앳된 얼굴로 무시무시한 요한의 악한 본성을 전형적이지 않게 그려낸 도경수를 향한 호평이 이어졌다. 시청자들의 호평도 좋았지만, 친한 선배 배우들의 칭찬이 도경수의 어깨를 치솟게 했다. 도경수는 “선배 배우들이 전형적이지 않은 악역을 소화하는 게 힘든 일인데 잘 소화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애 첫 악역을 연기를 마친 도경수의 세상은 요한으로 인해 한층 더 넓어졌다. 안 해본 캐릭터를 해보는 것이, 나아가 악역을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던 도경수에게 ‘조각도시’는 그 꿈을 이뤄준 고마운 작품이다.

‘조각도시’를 끝낸 도경수는 이제 내년 상반기 엑소 컴백을 위해 집중할 계획이다. 엑소도, 예능도, 연기 등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고 싶지 않은 도경수는 ‘슬기로운 이중생활’을 통해 여러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엑소도, 예능도, 연기도 모두 하고 싶다는 도경수를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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