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배우 배두나는 멋있다. 이것 외에는 달리 배두나를 설명할 말이 없다. 배우로서 자신이 해아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아닐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배두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있다.

지난 8일 개봉된 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두나는 극 중 소희의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했다.

이번 작품은 배두나와 정주리 감독이 영화 ‘도희야’ 이후 약 8년 만에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도희야’ 이후 연락이 없었던 정주리 감독에게서 ‘다음 소희’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배두나는 오랜 기간 연락이 없어 서운했던 것보다는 감독 대 배우로서 자신을 다시 찾아서 기뻤다고 했다. 배두나는 “‘도희야’ 작업할 때 나랑 같이 해서 좋았구나, 내가 내 식대로 가도 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좋지 않았으면 저를 다시 안 불렀을 거 아니냐. 심지어 유진 역할에 나를 생각하고 썼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동지 의식이 강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출연을 결심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배두나에게 ‘다음 소희’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배두나는 이에 대해 “그들에 대한 사건 사고나 개선돼야 할 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기회가 오면 한다. 단순하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소소한 마음으로 참여한다”면서 “감독님 스타일이 좋다. 시나리오나 영화가 사회 고발을 하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두나는 “사회적 약자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그 표현이 되게 담담하고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해오지 않았던 구석구석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오는 것 같다.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되게 날카롭다고 생각했다. ‘도희야’도 그랬고, ‘다음 소희’는 조금 더 따라가기 쉬웠다. 감독님이 관심을 기울여서 보지 않으면 어려운 이야기들을 해주는 게 저는 좋더라”하고 정주리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드러냈다.

영화는 지난 2017년 전주에서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정주리 감독은 소희가 일했던 콜센터의 환경과 업무 구조 등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묘사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는 현장실습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다. 다만 배두나가 연기한 유진은 창작된 인물이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오히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보다 저에게는 부담이 없었다.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분한테 피해가 되면 안 되고 어느 정도 비슷하게 연기해야 하는데, 유진은 픽션이라서 부담이 덜했다”라고 했다.

또한 배두나는 유진이 형사이긴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 PD나 취재 기자의 앞모습을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유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고 했다. 배두나는 “감독님이 이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던 책이 있다더라.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가 쓴 책이라고 하더라. 저는 그런 분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다”라면서 소희의 사건을 추적해 나가면서 고등학생 현장실습의 실태를 알아가는 유진의 감정선에 집중해서 연기했다고 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꿈 많던 소희가 콜센터 취직 이후 착취에 가까운 노동 현장에서 피폐해져 가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를 다룬 1부와 유진이 소희의 사건을 추적하는 2부로 나눠진다. 소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는 인물이지만, 유진에 대한 전사에 대한 설명이 많은 부분 빠져있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관객이 유진의 서사를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소희의 이야기에 집중이 되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배두나는 정주리 감독이 유진의 대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표현해 내려 노력했다. 특히 유진이 “힘든 일을 하면 더 존중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더 무시한다”라는 대사는 배두나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가장 크게 와닿은 대사이기도 했다. 배두나는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그 대사라고 생각했다”면서 “감독님이 그 대사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구나 생각했고, 유진 역시 소희 때문에 방금 떠오른 말이 아니라 그전부터 그런 생각을 계속해왔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라고 했다.

진심을 담아 유진을 연기했기 때문일까. 배두나는 결말로 향할수록 멘털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소희뿐만 아니라 현장실습을 나가는 고등학생 대부분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지만, 제대로 수사 조차 할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힌 유진의 감정에 깊이 몰입했기 때문이다. 배두나는 “유진은 픽션의 캐릭터지만 그와 같은 경험을 했던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님의 앞모습이 유진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관객들도 나랑 똑같이 느낄 텐데 얼마나 씁쓸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없었으면 하는 일이지만 끝나지 않은 일이니까”라면서 “‘다음 소희’에는 사회 고발을 하려고 했다가 꺾였던 사람들에 대한 응원도 같이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다음 소희’에 대한 배두나의 애정은 인터뷰하는 기자에게도 차고 넘치게 보일 정도로 가득했다. 마치 좋아하는 걸 말할 때 눈이 빛나는 것처럼 배두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좋았던 그 느낌은 촬영을 하는 내네에도 그랬고, 완성본을 보고 나서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주리 감독에게 칸영화제 출품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먼저 제안했을 정도로, 배두나는 ‘다음 소희’가 좋은 영화라고 확신했다.

배두나는 “제가 시나리오 봤을 때 느낌 그대로 어떤 감정에 대한 강요 없이 담담하게 영화가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찍을 때부터 전 느낌이 왔다. 촬영이 없는 날 현장에 놀러 갔을 때 콜센터 세트가 어떤 분위기인지 봤는데 영화가 잘 나오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다음 소희’로 배우로서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한 배두나는 다시금 그런 역할이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주저 없이 할 생각이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지금을 기록하고, 트렌드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현실에 스며든다면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작품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SNS에 글을 남겨도 될 일이지만, 배두나는 단호하게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작품으로 말한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보면 영리하게 실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배두나는 “배두나로서는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 최대한 참는다. 배우를 그만두면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내 캐릭터의 목소리가 묻힐까 봐요.”

이처럼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해왔던 배두나가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지, 배두나의 다음이 기대된다.

“그 어떤 작품을 해도 저는 너덜너덜해질 각오를 하고 해요. 마음의 갑옷을 입고 안 힘들 거란 기대를 안 해요. 마음을 난도질당할 각오를 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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