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성선해 기자] TV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다보면 분명히 예전에 봤건만 낯선 장면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익숙한 줄 알았는데 문득 새롭다. 데뷔 20년차를 바라보는 윤지숙(41)에게 연기란 그런 것이다. 이만하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매너리즘을 발견했다.

윤지숙은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극본 이경희, 연출 김진원)에서 채소장수 최미숙 역으로 출연 중이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투박한 외모가 특징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었다면 제대로 봤다. 그는 1997년 KBS2 '정때문에'로 데뷔한 뒤 '왕과 비'(1998), '산너머 남촌에는 2'(2012) 등에 출연해온 데뷔 18년차 중견 연기자다.

'참 좋은 시절'의 배경은 경북이지만, 상당수 출연자들은 부산 사투리를 사용한다. 이는 대중에게 부산 억양이 경상도 사투리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윤지숙은 "영화 '친구'나 tvN '응답하라' 시리즈도 다 부산 사투리를 쓴다. '참 좋은 시절'에서 경북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경주 출신인 김상호 정도다. 지방 사람들은 '경주에서 촬영하는데 왜 부산 사투리를 쓰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더라"며 경주가 배경인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산 출신인 윤지숙은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지만, 나는 경상도 출신임에도 그간 사투리 연기를 한번도 못해봤었다. 서울에 온지 20여년이 됐는데 어릴 때 쓰던 말투라 그런지 편하더라. 첫 대본 리딩과 회식이 동창회 같았다"며 '참 좋은 시절'이 경북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네이티브' 사투리를 구사하는 윤지숙은 촬영장에서 사투리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그는 "김지호랑 최화정도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김희선의 경우 초반에 사투리로 논란이 좀 있긴 했다. 근데 어머니가 경북 사람이라 그런지 금방 적응하더라"며 김희선의 적응력을 칭찬했다. 이어 "옥택연도 부산 출신이라고 들었다. 사투리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더라. 가수라 그런지 감성이 좋다. 한번은 대본에 우는 장면이 없었는데 혼자 금방 감정을 잡고 눈물을 툭툭 흘리더라. 굳이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교적 연기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김희선과 옥택연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참 좋은 시절'은 첫방송부터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전작 '왕가네 식구들'이 워낙 개성이 강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의 '참 좋은 시절'이 과연 전작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또한 첩과 본처가 같이 살고, 첩이 낳은 자식, 집안 간의 복수 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막장'이라는 딱지를 떼기 힘들다는 평도 있었다.

윤지숙은 "시놉시스상으로는 '막장'인 부분이 있다. 또 나도 10년 사귄 쌍둥이의 형제와 로맨스가 있지 않나. 근데 '참 좋은 시절'은 그런 소재도 되게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간다. 하영춘(최화정)이 '형님, 내가 첩이라서 그런 거나'라고 하자 장소심(윤여정)이 '나는 너를 첩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내 자식과 똑같이 생각했다'라고 하는 대사도 있지 않느냐"며 '참 좋은 시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가 극 중에서 맡은 최미숙은 외양은 남자같은 여자지만, 사실은 실속있는(?) 팜므파탈이다. 강쌍호(김광규)-쌍식(김상호) 쌍둥이 형제와 강동탁(류승수) 등 세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윤지숙은 "나도 최미숙이 무슨 매력이 있나 생각했다. 생활력인건가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는 "극의 전체적 분위기가 우울하고 무겁다. 복수도 있고 남녀 주인공 간의 아픈 멜로가 있다. 근데 우리들 분량은 작지만 시청자들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다. 그래서 더 부각되는 것 같다. 한 신 나오더라도 보시는 분들은 더 많이 나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며 작지만 작지 않은 배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상호와는 만나자마자 포옹신부터 찍었다. 되게 쑥쓰러워 하더라. 김상호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와 연극도 많이 한 배우다. 그간 나는 내 대사만 완벽하게 외워와서 하는 거에만 신경 썼는데 김상호는 같은 대본을 봐도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더라"며 "그걸 보면서 '역시 넓은 영역에서 일한 사람은 다르구나, 그간 내가 굉장히 안일하게 해왔구나'고 생각했다"고 동료로 인해 자신의 매너리즘을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KBS 18기 공채 탤런트인 윤지숙은 대학을 졸업한 뒤 부산에서 올라와 승무원 생활을 하던 당시 친구들의 권유로 응시한 시험에 덜컥 붙었다. 그것도 SBS와 KBS에서 모두. 그는 "원래는 배우는 특출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꿈도 못꿨다. 근데 (서류가 붙고) 연기 테스트를 하는데 정말 재밌더라. 당시 나는 개인기로 승무원들이 구명장비 사용법을 설명하는 걸 사투리 버전으로 보여줬었다"며 "나중에 듣고 보니 내 얼굴이 어떻게 보면 개성이 없어서 단점일 수도 있었는데 이 역할 저 역할 폭넓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뽑혔다고 하더라"고 인생의 길이 바뀌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승무원을 할 때는 처음에는 좋았다. 근데 2년하고 그만뒀다. 1등석까지 일을 다 배우니 다람쥐 챗바퀴 도는 생활이더라. 또 그때는 여행 자율화가 된지 얼마 안 된때라 나를 '안내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복도에서 술마시고 춤추는 손님도 있었다"며 선망의 직업이었던 승무원 생활을 스스로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새 데뷔 20년을 앞둔 윤지숙.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배우는 중이다. 더불어 그는 중견 연기자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소망도 함께 털어놨다.

"나는 일할 때 제일 즐겁다.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도 현장에 가면 살아난다.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한 것도 재미있다. 매번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에너지가 생긴다. 그래서 일이 없었던 시간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보통 40대는 맡을만한 배역이 많이 없다.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 등 자기 삶이 없는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자기 이야기가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런 점에서 내게 축복이자 선물 같은 드라마다. 또래 연기자들도 많고 선배들도 많으니 같이 하면서 많이 배운다. 이보다 더 좋은 연기 선생님이 있을까."

[티브이데일리 성선해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