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필모그래피에 작품이 쌓여갈수록 배우 공명의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그 세계에는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매번 도전하며 우리가 모르는 얼굴을 계속 꺼내 보일 준비가 된 공명이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고백의 역사’는 1998년, 열아홉 소녀 박세리(신은수)가 일생일대의 고백을 앞두고 평생의 콤플렉스인 악성 곱슬머리를 펴기 위한 작전을 계획하던 중 전학생 한윤석(공명)과 얽히며 벌어지는 청춘 로맨스로, 공명은 극 중 한윤석을 연기했다.

어느 순간 청춘 로맨스의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외국 작품까지 찾아봐야 할 정도로 한국 영화에서 청춘 로맨스는 가뭄에 콩 나듯 제작됐다. 청춘 로맨스 마니아들에게는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명도 마찬가지였다. ‘고백의 역사’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장르가 청춘 로맨스였기 때문이다. 공명은 “저도 청춘 로맨스물을 영화로 보고 싶었다. 최근 한동안은 리메이크작이 많았고, 오리지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장르를 내가 할 수 있다는 거에서 크게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또 교복을 입어야 한다니.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낭패인 건 아니다. 교복을 입어야 하는 역할을 제안한다는 건, 나이를 떠나 자신에게서 그 가능성을 봤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공명도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감사했다. 물론 첫 촬영부터 끝날 때까지,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친구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하면 그들과 잘 융화될 수 있을지 고민됐다”고 말했다.

부담감이 있었지만, 걱정은 안 했다. 한윤석의 서사를 잘 쌓아놓고, 자신이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에서였다. 소심하고 주눅 들어 타인 앞에 서는 걸 힘들어하는 한윤석의 성격이 사실은 오랜 가정 폭력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이 드러나면서 캐릭터는 한층 설득력을 얻었다. 서사가 단단히 쌓여갈수록, 공명은 섬세한 감정선과 결을 놓치지 않는 연기로 교복이 주는 이질감을 지워냈다. 덕분에 관객은 배우 공명이 아니라, 오롯이 한윤석이라는 인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공명은 한윤석의 서사를 위해 아버지와의 장면에 중점을 뒀다. 유난히 아버지 앞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마치 아이와 같이 한윤석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잘 표현하려고 했단다.

또한 병실에서 엄마에게 부산에 가고 싶다고 우는 장면은 공명이 첫 촬영부터 공을 들인 부분이다. 공명은 어떤 톤으로, 어느 정도의 감정으로 울어야 할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첫 테이크가 끝난 뒤, 자발적으로 요청한 두 번째 테이크에서 정말 아이가 엉엉 우는 것처럼 한윤석의 감정을 토해냈다. 이에 대해 공명은 “그 장면이 제 마지막 촬영날이었다. 고민을 엄청 많이 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 상황에 몰입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명의 섬세한 연기는 한윤석의 변화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박세리를 만나며 점차 밝아지는 한윤석의 모습을 급격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결로 그려내어 서사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공명은 “감독님이 처음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윤석이가 바뀌는 포인트들을 ‘확확’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기는 했다. 서서히 바뀐다고 해도 ‘확’이라는 느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라고 했다.

공명이 한윤석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 파트너인 박세리가 신은수였기 때문이다. ‘기방도령’에서 함께 출연했지만 마주치는 장면이 없었던 두 사람은 ‘고백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공명은 “이번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이었는데,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부산 사투리 연습부터 현장에서의 태도까지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자극을 받았다”라고 했다.

이어 공명은 “촬영 중에도 의견을 많이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췄고, 덕분에 세리와 윤석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고백의 역사’는 결국 세리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신은수 배우가 그 부분을 정말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라고 신은수와의 호흡에 대해 말했다.

‘고백의 역사’로 공명이 얻은 건 책임감이었다. 처음으로 현장에서 맏이 역할을 맡으며, 그동안 선배 배우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현장 분위기를 이끌고자 애써왔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그동안 선배들과 함께 했던 촬영 현장이 편안했던 건, 선배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의 역사'를 촬영하는 내내 실감했단다. 이에 대해 공명은 “이번 현장에서 책임감을 확실히 많이 배운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내가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일 때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겠다는 생각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공명은 올해 티빙 ‘내가 죽기 일주일 전’, tvN ‘금주를 부탁해’, 넷플릭스 ‘광장’, 그리고 ‘고백의 역사’까지 네 작품으로 쉼 없이 대중과 마주했다. 군 제대 후 스스로에게 도전이 되는 작품과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갈증을 품었다는 공명이다. 올해 쉼 없이 달려오며 그 갈증을 해소했고, 작품마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배우로서의 자신감과 더 큰 도전 의지를 품게 됐다. 이는 곧 다음 무대를 향해 더욱 치열하게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그렇지만 공명은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한정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은 캐릭터와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가고 싶다고. 그 도전이야말로 공명을 배우로서의 성장으로 이끌 핵심이자, 공명의 행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