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언젠가부터 MBC 연예대상에 재미있는 풍토가 생겼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대상의 윤곽이 또렷해지는데, 이게 해당 후보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장난 혹은 입김에 의해 더욱 확정 지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심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턱도 없는 사람이 거론된다거나 추켜세워지거나 하진 않는다. 대부분 최근 1년 사이 활동이 잦았고 그 성과도 나쁘지 않았던 이로 간택이 되는 까닭에 대중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특히 그 해 인기를 끌었던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확률은 거의 완벽해진다.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 ‘라디오스타’의 김구라, ‘전지적 참견 시점’의 이영자,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의 박나래, 전현무 등 하나같이 자신이 출연하여 진행한 예능을 그 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해내며, 함께한 멤버들로부터 지속해서 대상 후보자로 거론되다 결국 수상하는 데 이르렀다.

예능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가는 멤버이다 보니, 당연히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진 않는다. 대부분 장난기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또, 그저 염원을 담은 놀림으로만 볼 순 없다. 바로 가까이에서 보아온 사람들만이 형성할 수 있는, 암묵적인 인정의 분위기가 휘감고 있다 할까. 그래, 올 한 해 참 열심히 잘했다며 받을만하다는, 함께한 멤버들로부터의 인정, 생각해 보면 이것만큼 확실한 검증은 없다.

그래서 올해는 누구냐면, 만화가이자 방송인인 ‘기안84’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우선 2013년 무지개라이브에 출연한 후 2016년 고정 멤버가 되어 현재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는 ‘나혼산’을 기반으로, 일명 ‘나혼산의 확장판’이라고도 불리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가 시즌3까지 방영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어느새 2023 MBC 연예대상의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최근 ‘태계일주3’ 제작발표회에서 관련 질문도 받았으니 말 다 한 셈.

놀라운 건 얼마 전만 해도 ‘기행84’라는 별칭이 주어질 만큼 여러 기이한 언행을 선보여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매주 ‘나혼산’에선 기안84의 사과 행진이 이어졌고, 제작진과 다른 멤버들은 대중에게 기안84라는 인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시키려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안84 또한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들으며 방송에 걸맞지 않은 말과 행동은 자제하려 애를 썼고. 어디까지나 본 성격을 잃지 않는 선에서다.

한마디로, 이전에는 호감보다는 비호감 쪽에 훨씬 가까운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간의 노력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까. 어느 순간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급변화의 물결을 탔는데, 사실 많은 이들이 그 결정적인 계기로 ‘태계일주’를 꼽고 있다. ‘나혼산’에서도 종종 멤버들과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가 등장하면 기안84만의 여행법이 두드러지긴 했다. 간편한 복장과 최소한의 짐만으로 떠나 여행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묻어날 줄 아는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쾌감을 안겼던 까닭이다.

이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아마 본인도), 여행이란 콘텐츠는 기안84라는 사람이 혹은 캐릭터가 고유의 매력을 완연하게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러니까 ‘태계일주’의 성공적인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비롯된 심상치 않은 상승곡선은 기안84가 TV 화제성 비드라마 출연자 부문 1위에 오르고, ‘제50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최우수 예능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하는데 이르렀으니까.

이렇게 대상 수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고 이를 재빠르게 공론화시킨 게 ‘나혼산’이나 ‘태계일주’의 멤버들이다. 기안84를 두고 올해 대상 타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장난스레 오갔고 현재 그러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어 하나의 기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난이 어림도 없는 내용의 것일 때엔 장난으로 끝나기 마련이나 일리가 있어 보인다면 더 이상 장난일 수 없다.

그렇다고 마뜩잖게 느끼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가 1년간 보인 활약이 대상을 받을 만한 것인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거나, 여전히 그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거나 하여 현재 형성되는 분위기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기안84의 대상 수상이 예측되는 거지 확정된 건 아닌 까닭에 당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장난이 턱도 없는 내용의 것일 때엔 사람들이 굳이 반감까지 가지진 않는다. 어쩌면 기안84와 그를 둘러싼 흐름에서, 그를 지지하든 아니든, 많은 사람이 대상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내가 대상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스크린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대목은 여전히 회자되는, 한국 영화에서 손에 꼽히는 등장씬 중 하나다. 그를 상징하는 대사,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또한 마찬가지.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를 바라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의 떨리는 눈빛과 다음의 대사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어.” 뜬금없는 연상작용이라 하겠지만, 어쩐 일인지 현재 기안84와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면 자꾸 떠오르는 게다. 2023 MBC 연예대상의 귀추가 새삼 흥미롭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