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걸그룹 EXID 출신인 만큼 아이돌 연기가 쉬웠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오히려 아이돌의 고충과 고민을 알기에 더 몰입하기 힘들었다는 안희연(하니)이다.

최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IDOL [아이돌 : The Coup]'(극본 정윤정·연출 노종찬, 이하 '아이돌')은 실패한 꿈과 헤어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안내서로, 안희연은 극 중 '망돌(망한 아이돌)' 코튼캔디의 리더 제나 역을 연기했다.

걸그룹 출신인 만큼 아이돌 연기가 수월했을 거란 편견은 시청자뿐 아니라 안희연 본인도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안희연은 "대본을 봤을 땐 아무래도 내가 경험해 봤던 거라 연기가 쉬울 줄 알았다. 잘 할 수 있겠다고 착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면서 "첫날 첫 감정신을 찍는 것부터 실패했다. 마음이 하나도 안 아프더라"라고 말했다.

"비유를 하자면 이미 실체를 알아버린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다시 믿어보라는 것과 비슷했다. 내게 있어 '산타클로스'는 성공에 대한 로망 같은 거였다"는 안희연은 "아무래도 난 '망돌'의 현실에 대해 다 알지 않냐. 하지만 '아이돌'에서는 다시 데뷔 초로 돌아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제나의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그런 점이 연기하는 데 있어 어려웠었다. 그때 그 감정을 느끼려면 다시 스스로가 과거로 돌아가야겠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22살의 본인의 모습을 되찾기엔 쉽지 않았다. 안희연은 "내가 연기할 때만 산타의 존재를 갑자기 믿을 순 없지 않냐. 심적으로도 22살의 나로 돌아가야 했다. 4-5개월 동안은 그때의 나로 돌아가려 노력했던 것 같다"며 "멤버들 생각도 많이 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특히 정화한테 고마웠다. 그 시절을 떠올리기 위해 많게는 하루에 5시간씩 전화를 했는데 그 시절을 복기 시켜주는 질문을 던져주거나 '이미 언니는 제나와 비슷하다'고 응원해 주기도 했다. 내가 하니였을 시절에 날 알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해주니 고마웠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안희연은 "지난 영상들은 물론 일기장과 팬레터를 모두 다 찾아보며 '그때 내가 했던 고민들이 뭘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내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을까를 계속 복기하는 과정을 가졌다. 부족한 부분에 있어선 상상을 덧붙였다"고 전했다.

제나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EXID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안희연. 하지만 동시에 아팠던 기억도 떠올랐단다. 하니였을 당시 느꼈던 중압감과 미안함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고. 안희연은 "제나가 엄청 선한 캐릭터인데 연기하면서도 죄책감이 있었다. 팀 활동을 할 땐 선역이었을 때도 있고, 악역이었을 때도 있었는데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누군가가 분명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과연 내가 제나를 연기하는 게 맞나 고민되기도 했다"면서 "또 제나의 모습을 보니 사회적인 공격 때문에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더라. 많이 공감됐다. 드라마를 보며 제일 아팠던 건 현지(안솔빈)의 '어차피 우리 노랜 아무도 안 듣지 않냐'는 말이었다. 어렵게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힘들어했던 내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고 답했다.


이렇듯 안희연은 많은 노력 끝에 제나가 되는 데 성공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진심 어린 노력과는 별개로 시청률은 선뜻 따라와 주지 않았다. '아이돌'은 첫 회가 0.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 가구 기준)로 시작, 0.6%로 종영했다.

안희연은 "사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는데 막상 내 눈으로 그 수치를 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더라. 내 상처를 다시 꺼내 보였는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아 슬펐다. 쉽게 그 감정이 소화되진 않더라. 때문에 시청률이라는 숫자에 영향을 입고 변질되지 않게 노력해야 했다.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텐데, 내가 지지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이어 안희연은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은 예비 시청자들을 위해 '아이돌'만의 매력을 들려주기도 했다. "저희 드라마는 연어 같은 드라마라 생각한다"고 운을 뗀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실패'는 둘 중 하나로 무척 간단하지 않냐. 실제 생활에서는 사실 그렇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실패로 정의내렸다 해서 나조차 실패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열정, 꿈, 또 다른 시작, 과정 등 다양한 단어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돌'은 '살면서 반쯤은 실패하고 또 성공할 텐데 넘어져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도 드라마를 보며 코튼캔디가 해체하며 끝이 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는 드라마였고 거기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내 상처를 꺼내 보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아이돌'의 모습으로 돌아간 만큼 가수 활동에 대한 생각은 없을까. 안희연은 "팬들이 드라마를 보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나나 보더라.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고 해 괜스레 뿌듯하더라. 사실 예전엔 무대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았는데, 이번에 드라마를 찍으며 '혹시 이게 내 마지막 무대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슬프고 아쉽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뭔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하면서 "사실 EXID 멤버들과는 컴백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도 했다. 다만 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또 상황적으로 여건이 쉽진 않더라. 그럼에도 계속 얘기는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희연은 올해만 드라마 '아직 낫서른' '유 레이즈 미 업',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등 '아이돌'을 포함해 총 4작품에서 활약해왔다. 2020년 배우로 전향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그다.

안희연은 "아직 내가 연기를 하는지 모르시는 분이 많다. 절 계속 봐주시는 분들은 작품 되게 많이 한다고 칭찬해 주시는데, 여전히 많은 대중분들이 '왜 하니 안 나오냐'고 말씀하시는 게 현실이다. 추후 '그게 하니였어?'라는 반응이 나올 때 재밌긴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생각한다"면서 "올해 배우로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가 뭘 조금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 안 거다.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알게 됐다. 다만 정확히 뭘 하고 싶냐에 대한 답은 못 찾았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는 그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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