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데뷔한 지 30년이 지난 배우 박희순에게는 소박한 희망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기억되길 원하는 것. 그 소망을 '마이 네임'을 통해 이루고 싶다는 그다.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 네임'(감독 김진민)은 아버지 동훈(윤경호)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에 들어간 지우(한소희)가 새로운 이름으로 경찰에 잠입한 후 마주하는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박희순은 동훈의 오랜 친구이자 조직의 보스 최무진 역을 연기했다.

박희순이 무진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낀 감정은 "아주 나쁜 놈, 악마 같은 인물, 사이코패스"였다. 무진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럼에도 박희순은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무진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며 "남이 봤을 땐 악마이고 사이코패스여도, 내 입장에선 정당화를 시켜야만 했다"고 말했다.

박희순이 그런 무진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건 공감대 찾기였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다. 박희순은 "무진은 결국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속마음을 내비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냐. 그때 무진은 그간의 시간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왔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그를 더 폐쇄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었다. 저 스스로도 무진을 다 알진 못하겠지만 고독함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무진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많은 표현을 하지 않기였다"는 박희순은 "무진은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이다. 배신감과 미안함, 그리움과 미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난 오히려 그런 감정들을 옅게 표현하려 했다. 그래야만 관객들이 더 무진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 거라 봤다. 그저 난 무진에 동화돼 그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데에만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무진에게 천천히 가까워진 박희순. 이 과정에서 생긴 비화도 있었다. 그는 "드라마 속 첫 장면이 장례식 신인데, 그때 배신감, 슬픔, 분노, 죄책감 등 무척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 한소희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는데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 그렇게 울어선 안됐는데 계속 울었다. 결국 NG를 냈지만, 그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최무진을 이해하기 시작한 박희순이 다음으로 집중한 건 액션이었다. '마이 네임'에서는 타격감이 느껴지는 맨손 액션신이 다수 등장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배우 입장에선 이런 맨손 액션신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터. 이를 완성도 있게 만드는 것 역시 무진 역을 맡은 박희순의 의무였다.

박희순은 "지금껏 연기를 해오며 액션은 늘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이었다. 분량도 많았다. 원래는 2주 정도 액션 스쿨에 다녔다면 이번엔 두 달 정도 다녔다. 물론 그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선 배우들끼리 호흡하기가 편했다. 이미 다져져 있었기에 큰 부담 없이 액션 연기를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희순은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무엇이었냐는 물음엔 "아무래도 마지막 지우와의 신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계속 힘든 촬영을 해왔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며 지우가 지치듯 한소희 배우도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혹시나 다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전력을 다 하더라도 최대한 다치지 않게 노력했지만 쉽지만은 않더라. 감정적으로 서로가 많이 올라와 있던 상태라 서로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노력이 있어서일까. 최무진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은 박희순의 연기로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마이 네임'은 넷플릭스 톱10 세계 3위에 올랐고, 박희순 본인도 '섹시한 중년 배우'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박희순은 먼저 자신에게 '섹시하다'고 해주는 누리꾼들의 반응에 대해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해봤던 평가라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다. 사실 촬영 전부터 감독님은 '이 작품에서 무조건 최무진이 멋있고 섹시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분장팀과 의상팀에도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의뢰하셨다. 스태프분들이 워낙 저와 오래 해왔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이미 저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한 쪽 어깨가 삐뚤어져 있는 걸 알 정도다.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세계 3위 달성에 대해선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진 않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기록이기도 하고 제가 공개 당시에 자가격리 중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세계적인 인기 비결은 아무래도 기존의 언더커버 장르가 갖고 있던 클리셰를 새롭게 풀어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저희 작품의 경우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신선했고, 최무진이 기존 미국 영화의 사이코패스들과는 달랐던 점도 신선했다. 최무진은 냉철한 아메리칸 사이코가 아닌 흔들리고 고뇌하는 코리안 사이코다. 그런 흔들리는 모습들이 새롭게 보였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끝으로 최무진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 네임'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내 이름을 좀 찾았으면 좋겠다. 절 좋아하시는 분들도 절 '박휘순'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관심과 사랑도 좋지만 내 이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마이 네임'이즈 박희순이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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