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주인공이지만 보이질 않는다. 존재감은 흐릿하고 서사에는 힘이 없다. 페이즈4를 본격적으로 이끌어 갈 작품이라 보기엔 빈틈이 많아 보이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다.

9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감독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하 '샹치')은 마블의 강력한 전설 '텐 링즈'의 힘으로 어둠의 세계를 지배해 온 아버지 웬우와 암살자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진정한 힘을 깨달은 초인적 히어로 샹치(시무 리우)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대결을 그린 슈퍼 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다.

일단 액션 영화로서 '샹치'는 훌륭하다. 기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작품들에선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액션 시퀀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때 전 세계를 열광케 한 홍콩 무술 영화를 보는 듯 쿵후를 베이스로 한 완성도 높은 액션이 연달아 펼쳐져 눈을 즐겁게 하고, 이들의 액션으로 인해 시원하게 박살 나는 차량과 도로들은 통쾌함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런 완성도 높은 액션에도 '샹치'가 MCU 페이즈4의 포문을 본격적으로 열 재목이 맞냐는 질문엔 물음표가 그어진다. 캐릭터가 지닌 매력은 희미하고, 영화 자체로도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동양인 히어로 무비가 처음인 탓일까, 마블은 기존의 동양 영화 상당 부분을 답습해 '샹치' 안에 녹여냈다. 다만 오마주라 하기엔 그 빈도가 너무 잦다. 일례로 화살이 빗발치는 장면은 영화 '영웅: 천하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고, 웬우와 아내 장 리(진법랍)의 신비로운 첫 만남은 '천녀유혼' 속 한 장면같이 연출됐다. 샹치가 '텐 링즈'를 활용해 반격하는 모습은 케이티(아콰피나)의 대사처럼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이 연상된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봤을 땐 이런 장면들이 새롭고 흥미로울 수 있지만 동양의 문화와 영화에 익숙한 관객 입장에선 이미 봤던 것들뿐이다. 샹치-웬우 부자의 갈등, 샹치의 각성 등의 서사도 다수의 작품들에서 등장했던 소재다. 마블만의 새로운 재해석이 없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과 이야기가 연이어 등장하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난 뒤엔 마블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중국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렇다고 '샹치'가 기존 MCU 세계관에 제대로 스며든 것도 아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활약한 웡(베네딕트 웡)이 등장하긴 하지만 활약이 미미하다. 확실한 연결고리도 없이 헐거워 '샹치'는 MCU 세계관을 겉돌기만 할 뿐이다.

이 와중에 샹치의 존재감까지 흐릿하다 보니 계속 다른 곳에 눈길이 가게 된다. 심지어 샹치의 존재감은 웬우에도 밀릴 정도다. 웬우의 서사에 무게감이 많이 실린 까닭도 있겠지만, 양조위라는 배우가 주는 힘도 묵직하다. 반면 샹치는 맨손 액션신을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장면이 거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분명 액션은 훌륭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샹치'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바통을 건넬 전(前) 주자라는 점에서 많은 마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예매율 역시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블랙 위도우'로 295만 명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등 선전해 온 마블이 '샹치'로는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지 시선이 쏠린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