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뮤지컬배우 정선아가 생애 마지막 암네리스로 관객들을 찾았다.

'아이다'(연출 키스 배튼)는 이집트와 누비아 사이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대, 노예로 끌려온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공주, 그리고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이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속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정선아는 2010년 '아이다'를 처음으로 만났고, 암네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이번 시즌은 '아이다'의 전 세계 마지막 프로덕션이자 그의 세 번째 암네리스를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정선아는 지난해 초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폐막을 끝으로 잠시 공연계를 떠나 있었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새로운 일상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아이다'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중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한달음에 귀국했다는 정선아는 한 회, 한 회 정성을 다해 '아이다'를 빚어내는 중이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작품의 마지막 문을 꼭 같이 닫고 싶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암네리스는 정선아의 대표 캐릭터이자 인생을 바꾼 캐릭터이기도 하다. 2005년 '아이다' 초연 당시 아이다 역할로 오디션을 봤지만 고배를 마셨고, 2010년 다시 도전한 오디션에서 암네리스를 만나게 됐다는 정선아. 그는 "당시에는 나에게 강인하고 보이쉬한, 거친 면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여성스러움이나 사랑스러움과는 스스로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대본과 악보 속에서 만난 암네리스는 자신과 꼭 닮아 있었고, 배우 정선아가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관객들에게 알렸다. 이후 그는 '위키드'의 금발 마녀 글린다, '킹키부츠'의 로렌 등 사랑스러운 왈가닥 캐릭터를 자신의 작품 리스트에 추가하며 승승장구했다.

20대 중반 처음 만났던 암네리스를 10년 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 어느덧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 정선아는 세월이 흐르듯 자연스레 암네리스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분석했던 암네리스가 마냥 귀엽고 철없는 여성이라면 이제는 극 중에서 찾아낼 부분이 너무 많다. 어떤 존재라고 정의 내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면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며 "때로는 여성스럽고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차기도 하고, 큰 아량을 가지고 있는 여자 같기도 하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새로운 해석은 시원시원한 가창력,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화제가 되며 배우 정선아의 대표곡이 된 '마이 스트롱거스트 슈트(My Strongest Suit)'를 부를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선아는 "이제는 관객과의 호흡을 생각하며, 객석과 핑퐁을 하는 것이 목표"라며 "예전에는 그냥 고음 잘하면 되고, 춤 잘 춰서 무대를 화려하게 빛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을 더욱 에너제틱하게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내 할 일을 하고, 내 의상 챙기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아름다운 사랑을 매 회마다 눈에 담고 싶더라. 계속 무대 옆에서 두 캐릭터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된다"는 정선아.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암네리스를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고, 매 장면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 노 더 트루스(I Know The Truth)'를 부르며 예전에는 울기도 많이 울고 감정을 터트렸지만, 이제는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보며 마지막을 준비한단다.

정선아는 "극 중 누비아 친구들이 '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노래하지 않느냐. 나도 아마 10년 뒤에도, 나이를 먹어도 계속해 뮤지컬을 할 거다. 하지만 '아이다'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쉴 작품"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내 암네리스는 '아이다'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도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지금도 살아 숨 쉬며 매 회 공연을 하고 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건 아이를 낳건, 이 역할을 했다는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17년 차, 19살 어린 나이에 무대에 서기 시작한 베테랑 배우 정선아는 "최근에야 좀 어른이 된 것 같다"며 무대에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어느 순간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며 스스로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고. 그는 "무대에 있는 것이, 무대가 나를 불러 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무리 다른 일을 해봐도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고,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며 무대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는 저에게 완벽한 천직이에요. 뮤지컬을 안 했다면 뭘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거든요. 잘하는 것도 없고요. 운이 좋게도 뮤지컬 황금기를 같이 지나오며 좋은 시절, 좋은 때에 신데렐라 같이 뮤지컬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한 분야에서 박수를 받는다는 것도 무한한 영광인 거 같아요. 항상 무대에서 100 퍼센트를 보여주고 주위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좋은 배우로 오래 남고 싶습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