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홍준 기자] 영화 ‘세상끝의 사랑’을 연출한 김인식 감독은 배우 공예지에 대해 “순간적으로 집중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노출시키는 모습에서 대담한 면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조동혁 역시 “용감한 배우”라고 추켜세웠고, 한은정은 “신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디선가 많이 다져진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한예종 연극원 출신으로 이미 다수의 단편영화와 연극 무대 경험이 있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난생 처음 맡아본 베드신에 대한 질문에서도 막힘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연기관을 전달하는 그는 천성적으로 겁이 없는 부류인 듯 했다.

‘세상끝의 사랑’(감독 김인식·제작 담소필름)은 자신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 자영(한은정), 과거의 상처를 품고 사는 아이 유진(공예지), 두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동하(조동혁) 등 서로 어긋난 세 사람의 사랑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유진은 늘 바쁜 엄마에게 소외된 채 외로움과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아빠 동하를 만나게 된 유진은 그의 자상함과 따뜻함에 끌려 사랑에 빠진다. 엄마와 동시에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휘말린 그는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처럼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의 모습은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형태다. 더구나 공예지는 수위 높은 베드신까지 소화해야 했기에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는 사랑의 모습이라서 흥미로웠고 호기심이 갔다”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욕심이 났다. 잘만 표현한다면 풍성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로드무비’(2002), ‘얼굴없는 미녀’(2004) 등에서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는 소재로 주목 받았던 김인식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은 부담보다는 신뢰로 작용했다. 공예지는 “그게 감독의 스타일이고 말하는 방식이고, 결이라고 생각했다”며 “워낙 비슷한 종류의 작품을 하셨던 분이기에 호기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예지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유진이 갖고 있는 색깔과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실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한창 예민하던 시기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급변한 것이다. 여기에 “깍쟁이 같은 서울 아이들”의 텃새는 활달했던 그의 성격을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어찌 보면 극 중 아버지를 잃고 아픈 기억에 한없이 어두운 내면으로 침잠했던 유진과 비슷한 맥락의 인생을 산 것 같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진이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동하에게 사랑에 빠지는 설정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공예지는 “유진이 동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를 일찍 잃은 것에서 비롯된 부성에 대한 결핍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며 “엄마 자영이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가정적이고 따뜻한 성격의 동하에 의지하면서 사랑이 생겨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한 공예지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앞에 혼란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저돌적으로 돌변하는 유진의 감정을 성숙한 내면 연기로 소화했다. “촬영하면서 거의 모든 신이 힘들고 어려웠어요. 동하에 대한 마음을 숨기면서도 점점 커지고, 나중에는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동시에 유진이라는 아이에게 되게 연민이 많이 느껴졌어요. 유진이 겪는 감정과 상황이 일반적이진 않았지만, 직접 표현하면서는 흥미롭다고 느꼈죠.”


영화에서 공예지는 전라의 노출까지 감행하며 베드신을 선보였다. 그의 첫 베드신이었다. 설정도 설정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수위가 무척 높았기에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공예지는 워낙 캐릭터 자체가 욕심이 났기에 연기적으로 이 인물을 통해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노출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으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주변 분들의 우려가 고맙기도 했지만 일부러 안 들었다”며 “(노출은) 이 영화에서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대담한 대답처럼 실제 연기를 함에 있어서도 공예지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김인식 감독은 첫 베드신에 임하는 그가 못내 걱정돼 떨리진 않는지, 신경 쓰이진 않는지 세심하게 살폈지만, 공예지는 “어차피 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은 없다”고 했단다.

또한 김 감독이 신 자체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나 그림을 갖고 있었기에 촬영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감정 연기보다 수월했다. ‘베테랑’ 조동혁의 배려와 “프로처럼 당당하라”는 한은정의 조언도 용기가 됐다.

공예지는 영화의 주제나 연기보다는 베드신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촬영 전부터 마음의 각오는 조금은 해서 크게 신경을 쓰진 않는다”면서도 “베드신을 영화적인 맥락에서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비슷한 제의가 들어오면 역시 고민을 하겠죠. 중요한 것은 노출 그 자체가 아니라 캐릭터가 마음에 드느냐예요.”


이처럼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대담함과 패기, 그리고 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진중함이 엿보였다. 이쯤 되니 공예지라는 배우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소속사에서 이런 저런 작품들을 보고 있는 단계”라면서 “영화나 드라마, 장르나 매체를 한정 짓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런 그가 최근 롤 모델로 생각하는 배우는 정유미다. 단편영화부터 시작해 드라마, 영화를 하면서도 본인의 색깔과 말하는 방식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멋있다는 이유에서다. 공예지 역시 자신의 말을 하고 자신의 색깔을 꾸준히 가지고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라는 말 자체가 아직은 무겁긴 해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되려는 것보다는 좀 더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또 편안하면서도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좋은 연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티브이데일리 하홍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정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