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음악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추억을 상기시키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행복부터 슬픔까지 수 만 가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연출 이재준, 제작 뮤지컬해븐)는 이 같은 음악의 힘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원작 영화가 가진 서정적인 스토리가 밑그림이라면 음악은 그 위에 입혀진 색채와도 같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던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남자. 이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과 만나 반짝 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2년 개봉된 이병헌과 故 이은주 주연의 영화를 무대 위로 옮긴 작품으로, 지난 해 초연됐다. 2008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워크숍을 시작으로 5년에 걸친 창작 과정을 거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9년 전국문예회관연합회 주관 창작팩토리 사업에서 시범공연을 통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자리를 옮겨 공연 중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겉모습부터 많이 달라졌다. 여백의 미를 강조했던 초연과는 달리 무대가 인우가 근무하는 고등학교 교실로 변신해 꽉 찬 느낌을 준다. 이 무대는 198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되살리는 버스정류장, 대학 교실, 술집 등으로 변모한다.

스토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무대와 동선이 달라지다 보니 불필요한 몇 장면이 빠지고 인물 간의 교감에 조금 더 주력한 느낌이다. 강필석 전미도와 같이 초연부터 재연까지 함께 한 배우들 간의 연기 호흡은 딱히 말 하지 않아도 딱딱 들어맞을 정도로 유기적이라 안정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특히 인우 역의 강필석은 17년 전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모습을 맛깔나게 그려내 국어교사가 된 현재와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보여줘 극에 힘을 실어넣어준다.

재연에 합류한 성두섭 김지현 또한 초연 멤버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외형과 목소리 톤, 표현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녹아 든 애절한 감정은 절절하게 표현되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어느 누구 하나 어긋남 하나 없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수작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현빈 역은 초연에 이어 이재균 윤소호가 연기하고 있다. 초연 당시 몇 작품 하지 않아 경험치가 부족했던 두 사람은 1년 사이 배우로서 꽤 많이 성장한 모습이다. 특히 그간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와 뮤지컬 ‘쓰릴 미’를 통해 연기력을 갈고 닦은 이재균은 인우로 인해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자신의 삶에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인우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현빈의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해 최상의 감정 연기를 보여줘 호평을 얻고 있다.

현빈의 여자친구 혜주 역의 박란주를 비롯해 임기홍 진상현 김성현 안재영 등 출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극에 활력을 더한다.

죽는다는 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 인우와 태희 그리고 현빈은 이 사랑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도 준다. 그렇기에 스토리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이 안쓰럽고 눈물이 나는 건 역시나 극 속 사랑의 설렘과 고통, 번민을 제대로 담아낸 음악과 그 속에 감성을 더한 배우들의 명연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진한 향기와 색채를 남기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앞으로 얼마만큼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5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뮤지컬해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