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잘하는 걸 잘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채수빈은 늘 자신이 잘하는 걸 잘해왔다. 때론 그 잘하는 일에 매몰돼 이미지가 고착화될 거란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잘하는 일을 잘하고 있다면,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이 열릴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채수빈은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를 충전해줘'(연출 박수원)는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둔 작품으로, 인공 심장 배터리가 방전된 남자 백호랑(김영광)과 전기 능력을 가진 여자 나보배(채수빈)의 찌릿 짜릿한 충전 빙자 로맨틱 코미디로, 채수빈은 극 중 나보배를 연기했다.
채수빈은 '나를 충전해줘' 출연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당시 확신보다는 주저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고서는 확신이 안 들어서 많이 고민했다"며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가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 이미지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채수빈은 "내가 이 캐릭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계속 로맨스에서 사랑스러운 역할만 하다가 이 이미지에 갇혀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대중의 시선 속에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이 한정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벽을 깨준 것은 제작진의 믿음이었다. 채수빈은 "작가님, 대표님, 감독님이 다 오셔서 잘 만들 자신이 있다고 해주셔서 믿고 갔다"고 했다. 깊은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신나고 재미있게 촬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채수빈이 연기한 나보배는 전기를 다루는 능력을 지녔지만, 스스로를 괴물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채수빈은 억지로 차별점을 주려 하기보다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는 "이 아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에 가졌던 상처를 생각하려고 했다"며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한 지점을 설명했다.
외적인 스타일링 역시 인물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과한 작위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잡았다. 정전기가 이는 설정에 맞춰 머리를 뽀글거리게 연출하면서도 "스스로 귀염 뽀짝하게 보이려는 감정이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그 예쁜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예뻐 보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귀여워 보이지 않기 위해 더 신경을 썼단다.
극 중 백호랑과의 로맨스 역시 작위적인 설렘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스며듦을 택했다. 채수빈은 "서로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붙어 있고 스킨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모태솔로 보배 입장에서 심장이 떨리고 어리둥절하다가 호랑이의 반복되는 고백에 점차 마음이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점은 촬영 현장에서 의도했던 것과 대중이 설렘을 느끼는 포인트가 달랐다는 것이다. 채수빈은 "힘줘서 찍은 엄청 설레는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모니터링하면서 재밌다고 느낀 부분들이 많았다"면서 케이크, 비행기 장면 등을 꼽으며 "공연할 때 연습실에서 생각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것과 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를 충전해줘' 현장은 그간의 장르적 부담감을 덜어낼 만큼 밝고 즐거웠다. 채수빈은 "무겁거나 어려운 장면을 찍을 때는 스태프들까지 모두 날카로워지는데, 이번 현장은 코믹하고 통통 튀는 장면이 많아 다 같이 하하 호호 웃으며 편안하게 찍었다"며 "장르가 현장 분위기에 확실히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를 충전해줘'는 채수빈에게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게 한 치유의 시간이 됐다. 현장에서 선배 김영광에게 이미지 변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그는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가다 보면 다른 장르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조언을 얻었다고. 채수빈은 "내가 너무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었나 싶더라. 차곡차곡 밟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정리됐다"며 한층 여유로워진 미소를 보였다.
부담을 내려놓은 채수빈의 시선은 이제 더 넓은 곳을 향해 있다. 채수빈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휴먼 드라마나 살면서 부딪히는 갈등을 담은 현실적인 작품, 혹은 아예 다른 장르인 스릴러도 해보고 싶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최근 뮤지컬을 보고 선배님들의 연기에 감동해 나도 저런 멋진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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