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김수하가 또 한 번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1990년대 뉴욕 헬스키친을 배경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18세 흑인 혼혈 소녀 앨리. 라이선스 초연이라는 부담감 위에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과 움직임까지 얹어 새로운 '인생캐'를 만들어 낸 그다.
뮤지컬 '헬스키친'은 미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앨리샤 키스(Alicia Keys)가 13년 간의 설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으며, 강렬한 라이브 밴드와 폭발적인 퍼포먼스, 감각적인 무대 연출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김수하는 국내 초연 무대에서 주인공 앨리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김수하는 "요즘은 개인 스케줄이 아예 없다. 개인적인 행사 섭외도 아쉽지만 다 거절하고, 매일매일 같은 컨디션의 공연이 될 수 있게 유지하는 데 가장 큰 힘을 쏟고 있다"라고 말했다. "앨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이 흘러가다 보니 내가 흔들리면 작게는 제 주위의 배우들, 크게는 스태프들이 흔들릴 때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좀 더 예민하게 컨디션을 체크하고 공연에 임하려 하고 있다"라며 주연으로서의 책임감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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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헬스키친, 김수하 |
앨리는 자유분방하고 호기심 많은 소녀지만, 동시에 엄격한 어머니의 통제 아래 답답함을 느끼는 인물이다. 김수하는 앨리라는 캐릭터를 잡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17세 소녀의 반항심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것. "스스로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러 오신 엄마가 '너 어렸을 때 그대로다'라고 말하셔서 놀랐다. 어떻게 기억이 이렇게 서로 다를 수가 있는지, 어이가 없어서 '아닐 거야 엄마'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대로라고 하시더라"라고 농담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연출진은 앨리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라이자 제인 선생님과 엄마를 이해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고. 김수하는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어려웠다. 10대 시절 과거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작업이 정말 힘들었다"라고 했다.
통상적인 뮤지컬과는 달리 팝, 알앤비, 재즈 등 가요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넘버의 생소함도 김수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뮤지컬 배우를 꿈꾼 뒤로는 인생에 뮤지컬밖에 없었다"던 김수하는 "계속 뮤지컬 넘버들만 듣고, 뮤지컬만 보러 다니고, 그간 가요나 팝을 잘 모르고 많이 안 들었었다. 사실은 앨리샤 키스도 잘 몰랐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헬스키친'을 통해 가요를 많이 듣게 됐고, 앨리샤 키스가 어렸을 때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영상도 많이 찾아보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말했다. "그냥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라고 잘라 말하며 "연습실에서 오후 4시에 연습에 끝나면 집에 못 갔다. 제 성에 차지 않아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저를 포함해서 남아서 연습하는 몇몇 배우들 때문에 제작사 직원분들도 퇴근을 못하시는 거다. 너무나 죄송했지만 그때는 선택지가 없었다"라며 치열했던 연습 당시를 회상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집에서는 노래를 할 수 없었고, 연습실을 예약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두 시간씩 노래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고.
"클래식 뮤지컬을 주로 해왔으니 그런 애드리브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해봤어요. 당장 제가 애드리브를 창조해 낼 능력을 갖출 수는 없으니 백 번, 천 번 연습해서 다음날 제작진께 들려드리고, '어떤가요?'라고 계속 되물어 멜로디를 몸으로 익혔죠. 곡마다 성대를 갈아끼우는 수준이었어요. 어떤 부분은 록처럼, 어떤 부분은 여린 소리를 내야하고, 그런 지점들이 정말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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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헬스키친, 김수하 |
움직임도 새로 익혀야 했다. 발레를 좋아하고 익혀오던 김수하에게 그루브가 담겨야 하는 앨리의 몸짓은 완전히 다른 언어였다고. 김수하는 "아무리 비주얼을 완벽하게 꾸며도, 무대 위에서 앨리가 움직이는 순간 한국 사람 같아 보이면 그건 실패라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같이 공연하고 있는 전문 댄서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음악만 나오면 그 친구들은 리듬을 타더라. 저는 살면서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라며 웃었다. 연습실 구석에 앉아서 댄서들의 리듬을 그대로 따라하려 노력하고, 일부러 헤드셋을 착용하고 누군가가 말을 걸면 리듬을 타며 대답하려 했단다. 드라이브 송도 모두 1990년대 알앤비로 바꿔 들었다고. 그 결과 김수하의 앨리는 뉴욕 길거리에서 흔히 보일 법한 소녀, 싱크로율 100%라는 극찬을 받으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수하는 "앨리는 시작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10대의 질풍노도, 이제 막 피어나는 새싹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라며 "앨리 또래의 관객들에게는 '아, 나만 이렇게 답답하고 터널에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희망을 드리고 싶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동시에 "누군가는 앨리에게, 또 앨리의 엄마 저지에게,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관람을 권했다.
2015년 대한민국 여자 배우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미스 사이공' 킴 커버로 데뷔하며 혜성처럼 데뷔한 김수하. 2019년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통해 빛나는 신예로 국내 무대에 상륙한 이래 벌써 8년이 흘렀고, '렌트', '하데스타운', '아이다', '레미제라블' 등 굵직한 작품들의 주연을 도맡아오며 경력과 연륜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관객들에게는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그간 하고 싶었던 캐릭터 '도장깨기'를 이어가고 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겸손하게 답한 김수하. 그는 "30대가 넘어가니 이제 현실을 안다. 정말로, 진실로, 어떠한 작품이 와도 감사하더라"라며 "내 작품이면 싫다고 도망가도 온다는 걸 느꼈고, 왔을 때 애틋하게 잘 데리고 있다가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들이었다"라고 그간의 시간을 돌아봤다. 애틋하게 품어낸 '헬스키친'의 앨리는 김수하라는 배우의 새로운 칼을 세상에 꺼내 보인 시간이었다. '헬스키친'은 11월 8일까지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PL엔터테인먼트, 에스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