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일반인을 중심으로 한 연애 리얼리티가 예능 시장을 이끄는 주력 장르로 자리 잡았다. 연애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린 '하트시그널'부터 '환승연애' '나는 솔로' 등은 단발적인 인기를 넘어 연애 프로그램의 흥행보증 수표로 평가받는다. 연애 예능의 지속적인 화제성에 힘입어 규제와 제약이 많은 지상파에서도 과감한 포맷 실험과 파격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티브이데일리는 인기 연애 프로그램를 연출한 PD들과 연애 프로그램의 성공 공식, 제작 전략, 시청 트렌드와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연애 예능은 스테디'… 일반인 출연자가 만드는 공감과 재미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공개된 연애 리얼리티 가운데 장기 흥행을 이어오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서로 닮은 점을 가진다.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환승 연애' 등은 모두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반인들의 감정 서사를 핵심으로 둔다. 정제되지 않은 일상적인 대화, 예기치 못한 감정 변화 등 솔직함을 담은 순간들은 시청자들의 강력한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냈고 '연애 예능은 트렌드를 넘어 스테디'라는 인식까지 만들어냈다.

'환승연애'의 김인하 PD는 연애 예능의 지속적인 인기에 대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지 않나. 모두 자기만의 이별과 사랑을 떠올리며 서로 각기 다른 서사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연애 경험을 대입하거나 대리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더 공감을 하며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반인으로 출연진들을 구성하는 것 또한 연애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이다. 매번 달라지는 구성원들로 신선함을 더하고 시대상을 반영한 이들의 모습으로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영역이다. 즉, 기존 프로그램의 포맷은 유지하면서도 다른 매력의 캐릭터들과 서사를 볼 수 있어 콘텐츠의 질과 재미를 유지할 수 있다.

'하트시그널'의 박철환 PD는 "변하지 않아야 되는 재미와 새로워져야 되는 부분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되는 게 숙제다"라며 "매 시즌 지난 출연자분들과 또 다른 매력이 있거나 더 뛰어넘는 매력이 있는 출연자분들을 찾는 것도 리얼리티에서는 되게 중요한 부분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출연자 자체가 캐릭터이고 또 바로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반인 출연자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느끼는 장점에 대해 "촬영에 들어간 그 순간만큼은 진정성을 갖고 임할 수밖에 없고 드라마를 써서 만들 수 없는 스토리가 생기기에 내용 자체도 신선하게 나오게 되더라"라며 "그 시대를 보여 줄 수 있는 얼굴들이 나오기에 어떤 다른 콘텐츠들보다 현 시점에 맞는 자연스러운 트렌디함을 갖추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 정규 예능처럼 변화한 연애 프로그램… 화제성과 책임 사이 균형 찾기

세 프로그램은 시즌제로 공개됐던 방식을 넘어 기존 IP(지적 재산권)을 확장해 다양한 스핀오프를 제작하고 있다. '하트시그널'은 기존 출연진들의 새로운 조합으로 우정,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프렌즈'와 최종 선택 이후 실제 연애과정을 추적한 '애프터 시그널', 감정의 밀도를 높여 결혼까지 고려한 '하트페어링' 등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환승연애' 역시 새 시즌에 앞서 '환승연애, 또 다른 시작'을 공개했다. 이전 시즌의 출연진들이 모인 모습으로 추억의 향수를 자극하고 새로운 로맨스를 그리며 관심을 모았다.

콘텐츠의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시즌제 포맷에서 정규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특히 '나는 SOLO'는 약 일주일의 휴지기간을 두고 새 시즌을 방영한다. 이와 함께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 '지지고 볶는 여행' 등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의 세계관을 넓히는 동시에 시청자와의 접점을 유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나는 SOLO'의 남규홍 PD는 "'나는 SOLO'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우거나 주변인들과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콘텐츠다. 시청자들의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포맷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기에 틀을 갖췄다고 본다"라며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체계화시켜 두면 정규 예능처럼 내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촬영을 하고 2~3개월 동안 완성 작업을 진행한다. 그 과정 중에도 다음 시즌을 기획하고 출연자를 추려낸다"라고 전했다.

시청자들의 소비 패턴 역시 변화했다. 각 프로그램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에서 SNS를 통해 2차 창작물을 제작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담은 콘텐츠를 올리며 활발한 토론을 이어간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 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애 동향을 분석하고 출연진들의 서사를 재조립하는 등 참여형 콘텐츠 소비문화가 자리 잡았다. '환승연애'의 김인하 PD는 "그동안은 관찰자형의 소비 패턴이었다면 지금은 참여형으로 변화한 것 같다. 빠르게 증가하는 리뷰 영상 뿐만 아니라 각종 밈 AI 콘텐츠등으로 시청자의 참여가 2차 제작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화제성으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 콘텐츠와 출연진을 대상으로 한 악성 비방 콘텐츠 역시 생산되고 있다. 특히 일반인 출연자가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제작진 측은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법적 대응 절차에 나서는 등 보호 조치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남규홍 PD는 "일반 시청자 분들께서 공유하며 즐기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짓된 정보나 출연진을 향한 명예훼손, 모욕 등 부정적인 내용은 가차 없이 법적 대응에 들어간다. 또한 악질적인 유튜버 분들이 있어 최근 저작권 위반으로 신고하고 고소를 진행한 상태"라고 밝혔다.

종편·OTT 이어 지상파까지.... '일반인 연애 예능' 부재 깬 대전환

오랜 시간 동안 지상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프로그램에 소극적이었다. 사생활 보호, 윤리적 논란, 검증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주저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 OTT와 종합 편성 채널은 규제 촉이 상대적으로 적은 환경 속에서 과감하게 실험을 이어가며 시장을 선점했다. 이별한 과거 연인과 동반 출연하는 '환승연애'부터 남매의 연애를 함께 볼 수 있는 '연애남매', 단 한 번도 연애 경험이 없는 '모태 솔로'를 주제로 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이혼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돌싱글즈'까지 파격적인 소재의 연애 예능이 등장했다.

연애 예능이 시장 가치를 잡은 만큼 지상 또한 더 이상 연애 리얼리티를 '위험한 장르'로만 볼 수 없게 됐다. 화제성과 클립 조회수, SNS를 통해 얻는 파급력이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지표로 떠오르면서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KBS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누난 내게 여자야'를 통해 '연상녀'와 '연하남' 로맨스를 그리며 도전에 나섰다. 최대 12살 나이차를 가진 출연진의 관계성으로 신선함을 더하고 '나이'라는 조건을 이겨내며 사랑 자체에 집중한 이들의 이야기로 서사를 갖췄다.

'누난 내게 여자야'의 박진우 PD는 지상파 연애 프로그램의 한계와 관련해 "소재나 표현에 있어 여러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더 늦어진다면 언젠가는 아예 진입 시도 자체가 어려워질 거라고 판단했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조합과 시선으로 시작하려면 지금 바로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연상연하 커플의 비율이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에 집중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박 PD는 '누난 내게 여자야'를 통해 지상파 연애 프로그램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일정 부분에서 제약은 있지만 방송사에선 콘텐츠 경쟁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라며 "소재의 파격에서 표현의 파격으로까지 조금씩 시도해 보고 두드려보는 과정 중에 ‘누난 내게 여자야’ 역시 제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다만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연애 예능 역시 빠르고 강한 자극을 선호하는 걸 잘 알지만 지나친 거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 톤을 조절하고 있다. 자극보다는 ‘진짜 감정’이 보이는 순간에 집중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이제 일반인 소재의 연애 리얼리티는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플랫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화제성, 제작 효율성, 시청자 유입 효과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가치를 지닌 연애 예능은 이제 모든 방송사와 OTT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제작해야 하는 콘텐츠이자 포화된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공식이 됐다.

끝으로 박철환 PD는 "앞으로도 시장 가치성이 있는 연애 프로그램이 제작되기 위해서 고려할 요소는 고유성과 진정성이라고 본다. 한 시즌을 보고 난 다음에 시청자분들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느끼게 하는 요소는 물론 출연자의 감정 그리고 출연자를 바라보는 제작진의 시선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제작해야 할 것"이라며 "차별화된 소재와 포맷을 갖고 시작해야 하고, 시즌을 거듭해도 고유한 재미와 감성을 잘 가져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각 방송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