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아, '엘리자벳'을 만나 만개한 시간 [인터뷰]
2026. 09.27(일) 13:00
뮤지컬 엘리자벳, 린아
뮤지컬 엘리자벳, 린아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린아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타이틀롤에 섰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황후, 자유를 갈망한 한 인간의 이야기. '엘리자벳'이라는 이름을 시작부터 끝까지 외치는 무대 위에서 린아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황후의 고독을 그려내고 있다.

여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황실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고독과 자유를 향한 갈망, 황후 엘리자벳과 그의 주위를 운명처럼 맴도는 죽음(Der Tod)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다섯 차례 시즌을 거듭하며 유럽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긴 시간 동안 국내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된 작품인 만큼,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을 맞이했던 '엘리자벳', 이에 제작사는 무대와 의상을 전면 교체하고 연출을 새롭게 구성하는 한편 신규 캐스트를 대거 영입하며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린아는 그중에서도 단연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뉴페이스'였다.

오랜 시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 왔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타이틀롤을 맡은 것은 처음이라고. 린아는 "굉장히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면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엘리자벳'을 많이 외치는 작품이라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책임감이 막중하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특히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아온 작품인 만큼 후발주자로서의 부담도 컸다고. 린아는 "기존 배우들 또한 사랑을 많이 받던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비교 대상이 된다.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다. 대본에 충실해서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새삼 '엘리자벳'이 잘 만들어지고 쓰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캐릭터성도 굉장히 강하고 좋아할 요소들이 많았다"라고도 덧붙였다.

첫 공연 소감을 묻자 "이 공연이 정말 어려운 공연이구나를 또 한 번 느꼈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린아는 "연습할 때는 장면별로 끊어서 연습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붙여서 해본 건 많지 않았다"라며 "의상을 입고 조명을 받고 세트를 걸으며 연기해보니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공연이구나 느꼈다. 끝날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기분"이라고 말했다. "연기도, 음악도, 무대에서의 움직임도, 모든 면에서 여태껏 해온 작품 중 난이도가 높은 것 같다. 뮤지컬을 잘 모르고 오시는 분들도 '와, 이게 뮤지컬이구나' 감탄할만한 무대"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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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작 속 주인공이기에 앞서,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린아. 그는 연출의 상세한 설명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습 시작 전 역사와 실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인물별로 각 장면에서 감정이 나오기 위해 어떤 사실이 있었는지를 디테일하게 말씀해주셨다"라며 "또한 극작가인 미하일 쿤체를 직접 만나 리서치하셨던 것이나 작품을 쓴 계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세세한 부분을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캐릭터를 자신의 삶과 연결 지으며 감정을 발전시켜 나가기도 했단다. 린아는 "자유롭게 살던 아이가 엄격한 궁정에 들어가 통제당하는 환경에 놓였을 때, 억압당하고 맞서 싸우고 나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눈에 띄었다. 나 또한 통제 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나 내 주인은 나야' 외칠 때 속으로 '그게 맞지, 맞는 말이지. 그게 당연한거지'라고 동조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아이돌로 활동하던 가수 시절 경험이 자연스레 연결 지어졌단다. 그는 "처음 가수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한 인간으로서 존중 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핸드폰을 빼앗기거나 일상을 통제 당하는 느낌이 그랬다. 엘리자벳이 겪었던 박탈감과 동일한 수준은 아니겠으나, 그런 자유를 빼앗겼을 때의 감정을 저도 겪었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배우 장승조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 린아로서의 경험도 자연스레 엘리자벳 안에 녹아 들었다. 린아는 "내 엘리자벳의 강점을 꼽자면, 감정 호소를 잘하는 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엄마로서의 감정이 그렇다. 아들, 딸이 다 있기에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자신했다. 극 초반 10대 소녀를 표현할 때는 상상력과 극 중 설정값에 의존하고, 1막 중반 남편인 황제 요제프와 갈등하는 장면에서는 아직은 많이 흔들리고 미숙한 엘리자벳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에 힘을 빼는 등 완급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그가 가장 깊게 고민한 지점은 극의 중심 서사인 엘리자벳과 죽음의 관계라고. 린아는 "죽음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사랑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라며 "죽음을 나와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다가오고 싶게 하기도 하고, 내가 다가가고 싶기도 하고, 그런 싸움과 그 안에서 나를 지켜내려 하고 죽음조차 나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많이 듣고 생각해본 결과 죽음은 삶 자체가 아닌가 생각했다"라며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지면서도 엄청난 확신은 없는 그 감정이 관객들에게는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까 싶다"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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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삭 앤 지연으로 데뷔해 2005년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멤버로 활동하고, 2011년 뮤지컬 '젊은의 행진'으로 데뷔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린아는 지난 25년 동안 차근차근 자신의 이력을 쌓아왔다. '노트르담 드 파리', '몬테크리스토', '벤허', '스위니 토드', '레 미제라블', '렘피카'에 이르기까지 대작들을 거쳐오며 대한민국 뮤지컬 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단단히 자리매김을 하며, 이제는 가수보다는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

린아는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라는 꼬리표도 있었지만, 사실은 SM이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일을 시작해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덕에 지금까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천상지희라는 그룹도 실력 있는 그룹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나는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생소한 장르에 대한 겁은 있었으나, 오히려 답안지 같은 대본을 받아 들고 성실히 임하면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 자신의 성격과 잘 맞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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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는 황후로, 무대 밖에서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 두 삶 사이에서 린아는 오늘도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린아는 "극장에 오면 꿈과 환상의 나라 같다. 제 삶과 동떨어진 무대와의 갭이 엄청나게 크다"라며 "전작인 '렘피카'가 끝나고 팬들의 편지를 한아름 안고 집에 왔는데 제 삶이 너무나 현실이더라"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일이 편할 때도 있고, 그러한 감각이 자신의 원동력이라고도 설명했다. "드레스를 갈아입는 일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결국은 나를 찾는 시간 아닌가. 그래서 편하게 임하고 있다"라며 "아이러니하게도 두 삶을 지탱하는 힘은 고통을 주는 것들에서 나온다. 가정이 있기에 느끼는 힘듦이 있지만 거기서 오는 안정감과 행복이 있기에 위로를 받고, 극장에서 또 힘을 쓰고 돌아오면 집에서 에너지를 얻는 일이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담담했다. 린아는 "그다지 욕심이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역할이 계속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라며 "극과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로 남고 싶다. '린아 그때 '엘리자벳' 잘했지', '린아 엘리자벳 보고 싶다', 그런 평가를 듣는 배우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앞서 길을 열어준 선배들처럼 여배우 후배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엘리자벳'은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공연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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