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피곤이 묻어 나는 성숙한 표정, 불안을 동반한 여인 '안나'로 변신한 수지의 얼굴은 그의 연기 인생 전체를 뒤집고 20대의 마지막을 빛내기 충분했다. 벌써 데뷔 13년 차임에도, 수지는 '안나'를 향해 쏟아진 세간의 칭찬 세례가 아직은 낯설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수지는 최근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웹드라마 '안나'(극본·연출 이주영)를 통해 연기 변신에 나섰다.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정한아 작가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이 원작이다. 2017년 영화 '싱글라이더'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이주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수지는 주인공 유미를 연기했다. 유미는 주위의 칭찬만 듣고 살던 재능 있는 아이였지만 가난 탓에 현실에 부딪힌 소녀로, 일련의 사건 이후 거짓말을 통해 안나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2011년 드라마 '드림 하이' 이후로 꾸준히 배우로 활약해 왔지만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를 떼지는 못했던 수지에게, '안나'는 그의 연기력을 입증하는 무대이자 터닝 포인트가 됐다.

수지는 "처음 대본을 볼 때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편견도 없이 글을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주영 감독님 작품이었다. 감독님의 전작인 '싱글라이더'를 봤었고, '안나'에도 감독님 특유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작품을 선택한 계기를 밝혔다. 수지는 "감독님과 유미의 잘못에 대해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여자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려면 우리가 유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뭐가 있는지 고민을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수지는 유미와 안나의 인생을 연기하기 위해 이 캐릭터의 심리를 최대한으로 파헤치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전사부터 캐릭터가 마주하는 상황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고민했다. 특히 촬영 말미, 안나의 대사 속 본심이 헷갈리는 순간에는 심리 상담가에게 조언까지 구하며 표현 방식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단다. 그렇게 완성된 유미와 안나의 같은 듯 다른 얼굴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수지는 "유미는 현실과 이상의 갭이 커서 그로 인해 좌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주변 인물들이 허영심을 키웠고, 자신이 생각하는 위치와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가난이 가장 큰 결핍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했다"라며 "아무리 부모님이 유미를 사랑해주고 가정이 화목했어도 채울 수 없는 꿈들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수지는 "시청자들이 주인공인 유미에게 공감하려면 유미가 마냥 악한 인물로 그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유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안나가 된 이후의 행동들을 시청자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10대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감독님과 상의해 이런 어린 시절 서사를 활용해 캐릭터를 그려내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극 중 수지는 10대 유미의 모습부터 30대 안나의 모습까지 20여년 가량의 시간의 간극을 연기해야 했다. 그는 "캐릭터를 나이 대로 나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유미가 '사람들이 이걸 믿네? 이게 쉽네?'라는 생각에 세상이 우스워 보이고,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완벽하게 안나가 됐다고 생각했다"라며 "안나가 나이가 들수록 대범해지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게 되고, 특히 거짓말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라고 이야기했다.

배우 수지

또한 수지는 단순히 '리플리 증후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나의 속내를 '불안'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그는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정말로 자신을 믿는, 즉 스스로를 속이는 거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안나는 자신이 원래 유미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며 "속으로는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싶어서 엄청난 불안감도 안고 있고, 현주를 마주한 뒤로는 불안이 정말 심해지는 인물"이라고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포커페이스를 원래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계속 거짓말을 하게 돼 이런 삶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라는 것이다.

수지는 안나의 모든 거짓말의 동력 또한 '불안'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하며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캐릭터에 대해 접근했다"라며 "안나는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명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AI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웃음, 따뜻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좋은 선생님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 등이 있었을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른 사람으로 비쳤으면 했고, 그렇게 주변 캐릭터들을 대하려 노력했다. 다만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는 유미의 날 것의 감정이 들통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미의 불안을 떠올리기 위해 자신의 불안 또한 돌아봤단다. 수지는 "유미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경험을 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최대한 예전 기억을 떠돌려 봤다"라며 "일례로 터미널 신은 찍으면서도 연습생 시절이 정말 많이 생각이 났다. 버스 타고 고향인 광주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던 때랑, 드라마에서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인사하고 버스에서 불이 딱 꺼지는 순간이 겹쳐 생각되더라. 기분이 정말 이상했고, 내 안의 유미를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간들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총 6회로 구성된 '안나'는 최근 3회를 공개하며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수지는 "결국 시청자 입장에서는 '들킬까? 말까?'라고 생각하며 긴장하는 식으로 보게 되는 드라마 아니냐"라며 "유미이자 안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그가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거짓말을 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거다. 나아가서 목적과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이 굉장히 씁쓸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감정들을 관전 포인트로 여겨주셨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배우 수지

이처럼 수지가 모든 것을 던져 표현해 낸 '안나'는 공개와 동시에 시청자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수지의 깊어진 연기에 대한 칭찬이 줄을 이었다. 수지는 "연기로 칭찬을 받아본 적이 많이 없어서 낯설다. 촬영을 했던 기간들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기도 했고, 거의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 정말 좋더라"라고 말하면서도 "(칭찬이) 내 것이라는 느낌은 많이 없더라. 아직 너무 기뻐하고 싶지도 않다"라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수지는 "나는 항상 가수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배우라는 또 다른 직업이 생겼다.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면서 천천히 작품에 스며드는 과정을 즐기게 되고, 연기의 매력을 알아가게 됐다"라며 "요즘은 '안나'처럼 좋은 작품이나 현장, 감독님들과 동료들을 만나온 것이 굉장히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연기가 마냥 부담스러웠다면 지금은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며 한 번씩 느껴지는 강렬한 희열과 자극이 너무나 재밌다는 수지는 어느덧 완연한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