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일만(一萬) 시간의 법칙. 어느 분야이든 위대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칙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 있다. 배우로 대중 앞에 선지 꼭 10년째가 된 그룹 2PM 겸 배우 이준호다. 그 일만 시간을 건너오며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필코 해내고야 말겠다는 독기였다.

이준호 하면 기자에게 특별한 기억이 있다. 5년 전인 지난 2017년 드라마 '김 과장' 종영 이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준호는 "확실한 것은 열심히는 한 것 같다. 진짜로 열심히 했다"며 분명히 말했다.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길래 저렇게 확신에 찬 모습으로 열심이었다고 자평할까 문득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이 이준호의 필모그래피를 유심히 살펴보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정말로 '열심히' 연기했고, 연기에서 언뜻 보이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독기가 참 좋았다. 그 독기가 이준호를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배우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시간이 흘러 그의 독기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과 만났다. 바로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극본 정해리·연출 정지인)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을 담은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실제 조선 정조와 의빈 성씨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사극이다. 이준호는 극 중 왕세손 이산, 훗날 정조를 연기해 큰 호평을 받았다.

원작은 물론 조선 왕조 중 지금까지 사랑받는 왕인 정조의 인기는 이준호 캐스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간 미디어에서 그려진 정조와는 다른 이준호에 시청자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이준호도 이런 반응을 알고 있었다. 이준호는 "이런 반응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저는 그냥 자신감은 있었다"면서 "제가 어떻게든 연기로 정말 정조라는 인물이 되어 시청자분들 앞에 나타난다면 당연히 납득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반응은 연기로 상쇄시킬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지만, 실존 인물이라는 점은 큰 부담이었다. 이준호는 "제가 왕인 적도 없었고, 조선시대에 산 적도 없어서 몰입하기가 조금 힘들었다"면서 "유튜브와 책을 보면서 당시 분위기들을 최대한 느끼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오롯이 정조가 되기 위해 이준호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혹독하게 굴었다. 정적들의 견제 속 왕위에 오르려고 늘 긴장감과 압박감 속에 살았던 정조를 표현하기 위해 '옷소매 붉은 끝동'을 촬영하는 내내 식단 관리를 하며 철저하게 관리했다. 또 정조의 감정선에 몰입한 채로 그 시간들을 보내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노력은 시청자들에게 가닿았다. 방송 전만 해도 이준호를 우려했던 시청자들은 점차 이준호의 정조에 몰입하며 울고 울었다. 특히 세손 시절 늘 위험 속에서 긴장한 채 살아가는 정조의 모습이 반드시 캐릭터를 완성해내겠다는 이준호의 독기와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독기 가득한 이준호의 연기가 캐릭터를 한층 생동감 있게 만든 것이다. "배역과 현재 제 마음가짐이 일치하는 모습으로 묘사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많이 좋다"는 이준호다.

큰 호평을 받은 부분 중 하나가 청년시절부터 말년까지 긴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이준호는 이에 대해 "청년 세손부터 말년의 왕까지 억양과 표정 걸음걸이들을 최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면서 "세손 때는 눈에 힘이 들어가 있는 패기 있는 눈빛과 거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반면 즉위하고 나서는 눈빛보다는 상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세손 때보다는 톤이 좀 낮아졌다"라고 했다. 말년의 정조는 온몸의 힘을 빼고 걸음걸이도 느리게 걷지만 위풍당당함은 잊지 않으려 했단다.

이러한 디테일은 이준호에게 정조에 몰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제작진과 함께 고민하며 덧붙인 디테일들이 온전히 정조가 되는 느낌을 받게 했단다. 이준호는 "대본에도 촘촘한 디테일이 있었지만,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덧붙인 것들이 많다"면서 "특히 손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들이 캐릭터들을 보여주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궁녀인 덕임(이세영)을 사랑하지만 정치적 판단 앞에서 늘 망설일 수밖에 없었고, 가족이 되었음에도 왕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의빈 성씨를 지키지 못했던 정조의 생애가 이준호의 절제와 증폭을 오가는 감정 연기와 만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이준호는 "왕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동무를 살릴 수 없었던 정조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왕으로 태어난 천명을 지키고자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못 지키는 상황이 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팠다"라고 했다.

그 연기의 바탕에는 정조에 깊이 몰입하다가 자연스레 나온 이준호의 애드리브가 한몫했다. 특히 깊은 여운을 남긴 마지막 회 엔딩 신은 이승과 저승의 문턱에서 다시 만난 의빈 성씨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설정은 이준호의 애드리브 아닌 애드리브였다. 성군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나서야 비로소 의빈 성씨를 선택한 정조의 애끓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이어 이준호는 "저는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려 마침내 그들은 평범한 남녀가 되어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산이도 오랜 시간 듣고 싶었던 덕임이의 마음을 처음으로 제대로 확인한 순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배우들의 호연과 작가의 섬세한 필력,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출 등이 삼박자를 이루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지난 1일 17회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최고 시청률 17.4%(17회)를 기록하며 지난 몇 년 간 시청률 부진을 겪던 MBC 드라마의 위상을 재건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준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사랑을 받을 거란 생각을 사실은 못했다. 어쨌든 저에게 중요했었던 건 연기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사랑은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면서 "배우와 제작진 모두가 머리를 맞대며 재밌게 해 나갔다. 그런 애정이 우리 드라마를 봐주시는 시청자분들께서도 느껴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라고 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운은 계속되고 있다. 과몰입한 시청자들이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여운에 헤어 나오지 못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처음부터 과몰입이었다"는 이준호는 "여운에서 벗어나기가 아직도 힘들다. 엔딩이 생각나서 많이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제가 연기한 정조는 개인적으로 감히 생각해보자면 감정의 표현의 폭이 넓었던 정조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분들이 말씀해주시길 이준호의 정조라고 하면 청년 이산이라고 많이들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런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려요."

배우로서의 첫걸음이었던 영화 '감시자들'부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한 드라마 '김 과장'을 거쳐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옷소매 붉은 끝동'까지, 이준호가 배우로서 걷는 걸음걸음마다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따라왔다. 매번 앞선 작품보다 성장하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배우로서의 모습을 차근차근 각인시켜왔다. 그 시간 동안 이준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준호는 "늘 꾸준하게 했던 것 같다. 작품 속 인물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면서 "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연기를 했던 것들을 알아봐 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올해로 연기 경력 10년, 이준호는 지난날들을 "꾸준히 연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주어진 작품들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라고 반추했다. 아이돌이라서 조금만 잘해도 과분하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늘 이준호는 노력에 노력을 더해가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도 자신만 열심히 한다면 없어질 거라고 굳세게 마음먹었다. 지금의 배우 이준호를 있게 한 팔 할은 그 시간들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독기였다. 꿈을 원동력 삼아 덤덤하지만 뜨겁게 활동해나갈 이준호를 아낌없이 응원하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MBC '옷소매 붉은 끝동', JYP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