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관성을 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속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방해되는 일이 없다. 자신을 규정하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배우 한지민이다.

지난 29일 티빙과 극장을 통해 동시 개봉된 '해피 뉴 이어'(감독 곽재용·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15년째 남사친 승효(김영광)를 짝사랑 중인 엠로스 호텔 매니저 소진을 연기했다.

'해피 뉴 이어'는 한지민에게 힐링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힘들었던 시기 읽게 된 '해피 뉴 이어' 시나리오는 한지민에게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지민은 "자극적이고 큰 요소들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무난하고 따뜻한 느낌의 영화라서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러 배우들이 출연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도 한지민을 '해피 뉴 이어'에 이끌었다. 한지민은 이에 대해 "그동안 촬영하면서 중압감이 컸는데 다양한 배우들이 나오니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지민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연결돼 있는 지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소진이 그 중심을 잡는 역할이라기보다는 매끄럽게 연결해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면서 "다양한 배우들을 짧은 시간 안에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편하지는 않았지만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게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다"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예쁘게(?)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기는 했다고. 그간 '미쓰백' '조제' 등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던 한지민은 출연 확정 후 매니저에게 "'미쓰백'이랑 '조제' 때 너무 내추럴하게 나왔는데, 이번에는 화장 좀 하고 나올 수 잇겠는데"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큰 이유는 아니지만 예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올 수 있다는 점도 한지민이 '해피 뉴 이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15년 된 남자 사람 친구 승효(김영광)를 짝사랑하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고. 한지민은 "그동안 상대방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관계가 발전되는 캐릭터들을 많이 보여드렸기 때문에 혼자 사랑하고 망설이고, 친구의 결혼까지도 축하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의 연기가 저에게 나름 새로운 지점이어서 매력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극 중 소진은 15년 지기 승효를 짝사랑하지만, 친구 사이마저 끊어질까 봐 고백도 못하고 있다가 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한지민은 짝사랑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의 편안함 등 다양한 감정들을 소화해야 했다. 한지민은 "비단 얼마 안 된 사이의 짝사랑 감정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15년 친구이기 때문에 편안함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친구들과 다 같이 있어도 신경은 승효에게 향해 있는 느낌을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라고 했다.

소진의 다양한 감정선을 영화에 담아내기 위해 한지민이 신경 쓴 건 표정이었다. "예뻐졌다"는 승효의 말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 좋아하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들을 표정으로 담아냈다. 한지민은 이에 대해 "그냥 친구가 하는 말이면 편안하게 받아쳤을 텐에 승효가 한 말이라 부끄럽지만 기분 좋은 말로 다가올 것 같아서 표정에 디테일을 뒀다"라고 말했다.

한지민의 디테일한 감정 표현이 압권인 장면이 있다. 바로 승효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는 장면이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하며 남은 감정을 털어내는 소진을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한지민이다. 이에 대해 한지민은 "엘리베이터 신을 촬영 초반에 찍었다. 영광 씨랑도 아직 알아가는 단계이기도 했었고, 뒷부분을 먼저 찍는다는 게 배우에게 부담이 되는 신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한지민은 "감독님이 승효의 결혼식 날이기 때문에 소진이의 감정이 너무 과해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 또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줘야 했기 때문에 복합적인 감정들을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했다"면서 "막상 촬영을 했을 때는 감독님께서 한 번 밖에 안 찍었다. 다행히 영광 씨랑 처음이긴 한데 앞을 보면서 연기한 게 도움이 됐다. 마주 보고 잇었어도 눈을 빤히 보고 이야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도 많이 도움이 됐다. 작은 공간에서 소진이 나지막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담아낸 '해피 뉴 이어'로 관객들에게 연말 인사를 건넨 한지민. 한지민에게 2021년은 어땠을까. 질문을 받은 한지민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붉어진 눈시울로 "연말이라는 걸 잘 못 느꼈는데 질문을 듣고 주마등처럼 흘러갔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린 한지민은 "왜 눈물이 나지. 왜 이럴까. 제가 사실 힘들었던 시기에 이 영화를 선택을 했다. 이 영화는 개봉 시기가 정해져 있던 터라 빨리 개봉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고 촬영을 하면서 기다렸다"라고 했다.

한지민은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랑 가족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엄청 그립다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했던 느낌의 연말이 아직 안 왔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데도 저는 작품을 열심히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힘든 시기 소진과 '해피 뉴 이어'를 만나 어둠에서 나올 수 있었던 한지민은 요즘 전과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욘더' '우리들의 블루스'를 동시에 촬영하고, 예능 하게 출연해 과감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20대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않고 변화에 익숙해지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무엇인가를 할 때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보다는 '해보면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지민의 내일이 더 궁금한 이유다.

"행복의 가치가 점점 소박 해지는 것 같아요. 철없을 때는 이루고 싶은 게 많았어요. 올 한 해 떠나보낸 사람이 너무 많아요. 친구의 부모님들도 인사하는 날들이 오니까 나이가 든다는 건 이별을 준비할 일들이 많은 거더라고요. 좋은 일들이 생기길 바라지는 않고 무탈한 게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점점 느끼는 것 같아요."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해피 뉴 이어', 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