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박정민, 진심이 닿다 [인터뷰]
2021. 12.06(월) 15:30
지옥, 박정민
지옥, 박정민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배우 박정민의 계획엔 월드 스타는 없었다. 자신의 역할만 잘 해내자는 목표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목표만 바라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박정민의 진심이 마침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극본 최규석·연출 연상호)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 중 박정민은 아내(원진아)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지옥행 고지를 마주하는 평범한 방송국 PD 배영재 역을 연기했다.

박정민이 '지옥'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 원작 웹툰의 팬이었고, 또 연상호 감독의 팬이기도 했다. 심지어 박정민은 넘치는 팬심에 단행본에 직접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믿고 있는가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을 주는 책'이라는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박정민은 "단행본에 추천사를 쓴 건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뒤에 쓴 거라 안 쓰기도 뭐 해서 쓴 거다"라고 부끄럽게 답하면서도 "'지옥'은 일상의 간지러운 부분들을 잘 긁어주는 작품인 것 같아서 굉장히 재밌게 봤고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창작자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미로 저런 추천사를 남겨봤다. 실사화가 된 작품을 봤을 땐 제가 좋아하던 만화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잘 구현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제가 이 사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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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팬심과는 별개로 박정민은 배영재 캐릭터를 그려나가는 동안 연상호 감독과 의견차를 갖기도 했단다. 감독이 평범함을 강조하려 했다면 배우는 입체적인 면모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해석이 달랐던 것 뿐이지 방향이 다른 건 아니었다"는 박정민은 "사실 제가 여러 스케줄이 겹친 탓에 촬영 전 감독님의 지옥 브리핑을 듣지 못했다. '배영재는 어떤 인물이다'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감독님이 너무 흔쾌히 좋다고 하시더라. 내 의견을 다 존중해 주셨다. 그런 점이 연상호 감독님의 특징이자 장점인 것 같다. 배우의 선택을 언제나 믿어주신다"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렇게 박정민이 완성한 배영재라는 인물은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기보단 그저 편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박정민은 "'지옥'의 세계관 자체가 길거리에 사자 동상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새진리회라는 단체가 판을 치고 있는 시기이지 않냐. 영재는 그런 신념에 동의하지 않은 언론인이지만,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만들긴 해야 하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무기력한 소시민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입장에 놓인 영재가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결국 '짜증'이라는 감정 밖엔 안 떠오르더라. 새진리회에 지기 싫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그런 말투와 행동들로 튀어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정민의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짜증' 연기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그의 짜증 연기를 모아놓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작할 정도. 박정민은 "그 영상을 보며 '내가 이렇게 짜증을 많이 냈나' 반성을 하게 됐다. 그렇게 모아놓으니 짜증만 내는 사람처럼 보이더라"라고 농담하면서 "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결국 가장 효과적인 연기는 '짜증'이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게 해주신 덕에 힘을 풀고 자연스럽게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박정민은 연기를 함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인물을 지루하지 않게 보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굉장히 평범한 사람, 굉장히 자연스레 말을 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이어야 했지만 동시에 지루하지 않아야 했다. 또 1막인 1부, 2부, 3부를 보며 답답할 수도 있는 부분을 풀어줘야 하는 사람이 돼야만 했다.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기를 했다"고 답했다.

'지옥'은 제목이기도 한 지옥이라는 소재와 '고지'를 집행하는 사자, 그리고 새진리회라는 종교단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연관돼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박정민은 "여러 해석이 나오는 걸 보며 정말 많은 관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를 그냥 근육 덩어리로 보시는 분들도 있고, 뭔가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그런 관점 차이를 보는 게 재밌었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지옥'은 종교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박정민은 "개인적으론 '지옥'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그저 신의 손바닥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고지' 역시 그렇다. 신이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내리는 심판은 아니라 생각했다. 오히려 갑자기 닥친 불가항력적인 재난에 가깝다. 시청자 입장에선 인간들이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과 만났을 때 이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집중하면서 감상했다. 다만 다른 시선과 해석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 본다. '지옥'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 역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만한 토론 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충돌하는 가치관 때문에 더 관심 있게 봐주시는 거라 생각한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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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지옥'은 입소문을 타며 '오징어 게임'이 연 K-콘텐츠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TV쇼 전 세계 1위 자리를 10일 연속 유지했을 정도. 이런 대성공은 박정민 본인 역시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냥 놀러가듯 현장에 가서 촬영을 했고 감독님과 놀다온 기억 밖에 없는데 이렇게 좋은 반응을 받으니 신기하다. '지옥'이라는 작품이 저에게 이렇게 큰 선물을 줄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제가 참여했던 작품 중에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인 성공에 해외 진출 욕심은 없을까. 박정민은 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일단 한국에서 잘 하고 싶다"는 겸손한 바람을 전한 그는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진출할 리도 없다고 본다. 그냥 한국에서 잘 하다 보면 '지옥'처럼 전 세계 관객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작품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한국적인 것들을 잘 만들어서 전 세계 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다"라고 답변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박정민은 "한국 작품들이 지금에서야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실 한국 작품들은 그 이전부터 좋았다. 그 길이 넷플릭스라는 길을 통해 열린 것뿐이라 생각한다. 이 좋은 걸 우리만 즐기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분들이 볼 수 있는 장이 열린 게 고무적이라 본다"면서 "인기의 이유는 한국의 창작자들이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갖고 있다. 그런 점이 관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게 한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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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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