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꿈은 ‘걸스플래닛’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윤지혜의 슬로우톡]
2021. 10.25(월)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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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Mnet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이하 ‘걸스플래닛999’)이 대장정을 마치고 데뷔 그룹 ‘케플러(Kep1er)’를 탄생시켰다. 전세계를 겨냥한 K팝 걸그룹을 만들기 위해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에서 지원을 받아 다섯달 동안, 여러 방면에서 증명을 거치게 하며,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국내외 팬들을 양성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해외의 상황은 달랐을 지 모르나, 국내의 대중에게는 그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앞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투표 순위 조작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졌던 Mnet에서 만든 것인 데다가, 그럼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여전히 동일한 스타일에 이제 학을 떼는 분위기가 형성된 까닭이겠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게 누군가의 꿈을 상품화하는 형태인지라 이를 대하는 제작진의 진정성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무엇이다. 이 부분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말았으니 국내에서는 외면받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고 안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체감하지 않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다.

와중에, 아이돌 그룹의 데뷔조에 들겠다고 저마다의 꿈과 포부를 안고 모인 소녀라 불리는 참가자들의 진심은 매번, 어찌나 한결같은지 제작진이 어떤 모양새로 비추느냐와 상관없이, 찾아온 기회를 반드시 붙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어진 미션마다 그렇게 간절하고 또 절박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하고 또 절박하게, 온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도 최종 9인 외에는 모두 탈락이라는 게 현실이었고, 누구도 경쟁에 열심을 내지 않는 참가자는 없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나아간다는, 나름의 훈훈한 의미를 덧붙여 보았다만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누군가의 간절함을 꺾어야 하고 그 꺾이는 간절함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들이 결국 맞닥뜨려야 할 비극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마지막 생방송 무대에 설 18인을 선발하기 위한 ‘O.O.O 미션’에서 3팀으로 분류된 소녀들이 보인 무대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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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순위의 참가자들, 즉 탈락 위기에 놓인 소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고 경쟁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웬만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순위 변동은 크게 없을 터였다. 의욕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그들은 경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무대에 오른다는 그 자체를, 거기서 비롯되는 행복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이 바로 자신이 걸그룹의 꿈을 꾸고 ‘걸스플래닛999’의 무대에 오른 근본적인 이유임을 자각한 것이다. 물론 무대가 끝나고 순위 발표식에선 다시 탈락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모습으로 돌아갔다만,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선택과 탈락의 기로에 놓여 함께 몸과 마음을 부대낀 친구들이 떨어지길 빌어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비정한 현실을, 무대 위에서만큼은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하겠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 다들 고생했어요.”
마지막 순위가 10위로 머무르며 데뷔의 기회가 눈 앞에서 문이 닫힌 참가자가 남긴 소감 중 일부다. ‘걸스플래닛999’가,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가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일한 통로인마냥 유별나게 굴어도, 소녀들의 앞엔 여전히 수많은 기회들이 놓여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찾아들 게 분명한 현실이니 너무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저 먼저 데뷔의 꿈을 이루었을 뿐인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주고 탈락한 게 못내 아쉽고 섭섭해도 그간 고생한 자신을 전심을 다해 기특하게 여겨주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면 될 테다. 꿈을 꾸는 이의 간절한 소망을 빌미로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도록 몰아넣고 발생하는 장면들로 장사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감동의 지점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Mnet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 공식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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