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김종은 기자] 올해 초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4관왕 수상으로 들떴던 한국 영화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 19 감염증 여파로 '기생충'의 후광 효과는 커녕 생존을 걱정해야할 정도다. 올 상반기 한국 영화계엔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개봉 연기·제작 중단, 영화 산업 전반 '치명타'

올해 2월 말부터 코로나 19 감염증이 확산세에 접어듦에 따라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다. 극장가에 관객들의 발길이 끊으면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신작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개봉을 연기해야했다. 한국 영화 기대작이었던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부터 '콜'(이충현), '침입자'(감독 손원평), '결백'(감독 박상현) 등이 개봉을 미뤘다.

결국 '사냥의 시간'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했다. '침입자'와 '결백'은 5월 말 개봉을 타진했다가 이태원 쇼크로 한 차례 더 연기한 뒤 각각 6월 4일과 10일에 개봉했다. '콜'은 현재 개봉이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태다.

극장가 성수기인 여름 텐트폴 대전도 전면 수정됐다. 당초 NEW의 '반도', CJ엔터테인먼트의 '영웅'(감독 윤제균),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메리크리스마스의 '승리호'(감독 조성희), 쇼박스의 '국제수사'(감독 김봉한) 등의 대결이 예고돼 왔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감염증 여파로 투자배급사들은 여름 성수기 라인업 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승리호' '영웅' '모가디슈' '국제수사'가 여름 대전을 포기하고 하반기로 개봉이 연기됐다. 이로 인해 올 여름 극장가에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 '반도', '정상회담'(감독 양우석), '오케이! 마담' 등의 작품이 맞붙게 됐다.

외화들의 개봉 일정도 연기됐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시리즈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4월에서 11월 25일로 개봉을 미뤘다. 6월 초 개봉 예정이었던 '원더우먼 1984'도 8월 14일로 개봉을 연기한 상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화 한 영화 '뮬란'은 당초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여파로 인해 7월 24일로 개봉을 일단 연기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블랙 위도우 솔로 무비인 '블랙 위도우'도 개봉일을 5월 1일에서 11월 6일로 연기했다.

개봉 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 특히 콜롬비아 보고타 100% 로케이션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던 '보고타'(감독 김성제)는 결국 올해 촬영 재개를 포기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다. 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 충무로의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만나 화제를 모았던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강화와 해외에서 세트 공수가 어려워지면서 결국 촬영을 연기했다.

이 뿐만 아니라 영화 '피랍'(감독 김성훈·),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 '교섭'(감독 임순례) 등의 작품들이 해외 로케이션 일정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촬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촬영을 중단했다. 이후 '교섭'과 '범죄도시2'는 국내 촬영을 재개했고,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도 촬영에 돌입했다.

◆사태 진압 나선 영진위, 찬반 나뉘는 구제 정책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난달 12일 '코로나 19 충격: 한국 영화산업 현황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영화 제작 현장 피해 규모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촬영 준비, 촬영, 후반 작업, 개봉 준비, 개봉 단계에 있던 82편의 작품 가운데 절대다수가 코로나 19로 인해 진행하던 공정을 중단하거나 취소 및 연기했다. 이에 영화 현장에서 총 413명의 고용이 중단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227명은 무급 휴가, 186명은 고용이 취소된 상태다.

이에 영진위는 생계를 위협받는 영화인들을 위해 지원에 나섰다. 기존에 시행하고 있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지원 사업의 대상과 전체 예산을 확대했다. 이 외 여러 가지 특별 지원 사업을 논의 중에 있다. 또한 코로나 19 감염증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제작사와 배급사를 위한 별도의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제작 활성화 지원과 개봉 활성화 지원으로 나누어서 운영 중이다. 촬영이 중단됨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개봉이 연기되면서 추가되는 마케팅 비용 등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급격히 줄어든 관객수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는 극장가를 지원하기 위해 '극장에서 다시, 봄'이라는 영화 관람 독려 캠페인을 펼쳤다. 이 캠페인을 통해 영진위는 90억 원을 들여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영화 티켓 6000원 할인 쿠폰을 선착순으로 배부, 극장 방문을 독려했다. 영진위 측은 해당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극장에서 매출이 발생을 하는 구조가 영화 산업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극장 자체가 기피 시설로 보이는 부분이 생기면서 영화 관객이 줄어들었다. 때문에 영화 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조심스럽지만 관객분들을 오게 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극장에서 다시, 봄' 캠페인이 시작됐던 지난 4일 극장을 찾은 총관객은 8만 4130명이다. 하루 전 관객 수가 2만 8172명에 그친 것을 돌이켜 봤을 때 무려 3배가 상승한 것이다. 이날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크게 늘었다. 5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전날과 비슷한 8만 4778명이었고, 주말인 6일과 7일엔 총 31만 6977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다만 아직 아쉬움이 많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평균 일일 관람객 수가 85만 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적은 수치이기 때문. CGV 관계자는 "활기를 띠고 있는 건 사실이나, 아직 나아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할인 티켓의 사용률이 높지 않은 편이고,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관람객 수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7월이 돼서야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극장에서 다시, 봄' 캠페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아직 코로나 19 감염증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 위험이 높은 밀폐된 공간인 극장에 대한 방문 독려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잇따랐다. 또한 영진위의 극장가 지원 사업은 정부 대응과도 상반됐다. 정부가 최근 생활 속 거리두기 정책을 강화하면서 14일까지 모든 공공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다. 일반 영화관은 운영 중단 대상이 아니지만, 정부가 운영 중인 영화관은 긴급 휴관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영진위 관계자는 "안전한 영화 관람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 중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서 극장 운영과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각 멀티플렉스 극장들에 배포했다"면서 "6월 중에 이 매뉴얼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한차례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며, 극장 관계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관객들이 안전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각 영화 포스터, 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