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뮤지컬 '마틸다' 속 아이들의 아름다운 춤과 노래는 화려한 무대 사이 숨어있는 블랙코미디를 더욱 빛내는 '신의 한 수'다.

지난 9월 개막한 '마틸다'(연출 매튜 와처스)는 작가 로얄드 달의 동명 소설과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와 오빠, 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장의 틈바구니에 치여 사는 어린 천재소녀 마틸다가 자신을 둘러싼 억압에 맞서 용기를 내고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마틸다'는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제작한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25년 만에 만든 대극장용 뮤지컬로, 2010년 첫 공연 이후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를 휩쓸며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마틸다' 한국 초연은 최초의 비영어권 라이선스 공연이다.

원작을 쓴 영국의 소설가 로얄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현대 동화 작가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나는 소재와 동시에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대담하면서도 뻔뻔스러운 전개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마틸다' 역시 주인공의 기구한 삶을 통해 아동 학대와 폭력, 억압을 맹렬하게 비꼬며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대로 옮겨진 '마틸다'는 원작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마틸다의 아버지인 웜우드는 중고차를 속여 파는 사기꾼에, 어머니 웜우드 부인은 춤에 빠져 가정을 내팽개친 인물이다. 이들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틸다를 불량품 취급하고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살기를 강요하며 정서적으로 학대한다. 마틸다는 유일한 안식처로 책을 발견하고, 혼자 글자를 익힌 끝에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독학으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파우스트' 등을 술술 읽는 천재로 자란다.

마틸다의 지적 능력은 알파벳도 읽지 못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월등히 빛난다. 담임인 허니 선생은 아이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월반을 제안하지만, 교장인 트런치불은 "아이들에겐 각자 정해진 틀에 갇혀 있는 시기가 필요한 법"이라며 마틸다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항상 아이들의 잘못을 캐고 다니며 머리채를 잡아 공중으로 날려 버리거나 귀를 잡아 늘리고, 때로는 좁은 독방에 가둬두는 등 학대를 일삼는 트런치불 교장은 마틸다의 새로운 적이 된다.

마틸다가 부르는 대표 넘버 'naugthy(너티)'는 그의 성격과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곡이다. 마틸다는 "불공평하고 또 부당할 때 / 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 / 꾹꾹 참고 또 참으면 날 잡아 잡수라고 / 다 포기하는 건 옳지 않아"라는 가사와 함께 때로는 약간의 '똘끼'가 필요하다 외친다. 이 작은 소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머리에 강력 본드를 바른 모자를 붙여 버리고, 죄없는 아이를 추궁하려는 트런치불 교장의 눈을 피해 그럴싸한 핑계까지 대며 대담하고 주체적인 행동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국 마틸다는 천재적인 지적 능력으로 인해 눈으로 물건을 옮기는 초능력을 얻게 되고, 이를 이용해 학급 아이들을 돕고 트런치불과 부모를 자신의 인생에서 몰아내며 행복을 스스로 되찾는다. 마틸다가 '똘끼'라 말하는 용기에서 비롯된 여정은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교훈을 남기며, 나아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경각심을 이끌어낸다.


'마틸다'는 '시카고' '아이다' '아리랑' 등을 제작한 국내 유명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창사 3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신시컴퍼니는 올해 초 아역 배우가 중심이 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렸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마틸다'에서도 아역 배우를 기용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공연을 선보였다.

'마틸다'는 주인공 마틸다를 비롯해 또래 아이들이 다수 등장하는 작품이다. 8개월 간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어린 배우들은 완성도 높은 연기와 노래 실력을 뽐내며 스타 마케팅 없이도 좌석을 가득 채웠다. 마틸다 역을 맡은 이지나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주위에 이 사실을 숨기고, 이로 인해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해 극의 중심을 잡았고, 이외에도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무대를 사랑스러움으로 채웠다.

원작 소설을 뮤지컬 무대로 옮기면서 머릿속 상상까지 현실로 옮긴 듯한 독창적인 표현 기법들도 돋보였다. 극 중 여성인 트런치불 교장 캐릭터는 190cm가 넘는 거구의 성인 남자인 배우 최재림이 연기해 아이들과의 체격 차를 극대화했고, 마틸다의 상상 속 이야기를 무대에 그려내기 위해 마술 효과를 사용했다. 저절로 써지는 칠판 위 글씨를 표현해 낸 영상 기법과 천장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 이들이 객석 위로 날아오르는 군무 역시 관객 '어른이'들의 감탄사를 자아내며 이들을 동화 속 세계로 인도했다.

기존의 영어 가사에서 두드러졌던 언어적 특성을 한국어로 매끄럽게 번역한 점 역시 눈에 띄었다. 알파벳 순서에 맞게 각각 단어들을 배합해 만든 '스쿨 송'을 "에이(A)구 / 삐(B)지고 / 반항할 시(C)" 등으로 재치있게 번역하는가 하면 언어유희를 사용해 코미디 요소까지 놓치지 않았다. 다만 아역 배우들의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 사소한 아쉬움도 열정 넘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상쇄된다.

'마틸다'는 2019년 2월 10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