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20세기를 풍미한 세계 3대 테너로 손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한국을 찾았다. 싱그럽고 맑은 목소리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청춘임을 입증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일곱 번째 내한 공연 '2018 플라시도 도밍고 콘서트 인 서울'이 26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도밍고의 오랜 친구이자 해외 투어를 함께 해 온 유진 콘이 지휘를 맡았고, 푸에르토리코 출신 소프라노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 임영인이 게스트로 나섰다. 연주는 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시대의 거장,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는 스페인 출신의 바리톤이자 테너다. 바리톤으로 데뷔해 테너로 전향, 故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손꼽히며 오랜 전성기를 누린 후 10년 전 다시금 바리톤으로 전향해 77세 고령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무대에 서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는 1999년 첫 내한 이후 일곱 번째 공연이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다음 내한 공연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거장의 무대를 보기 위해 7000석 객석이 가득 찼다.

백발이 무성한 도밍고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해 지나간 세월이 묻어 있지만, 눈을 감고 그의 목소리에만 온전히 귀를 기울이면 여전히 약동하는 청년의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도밍고는 가사에 맞춰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다정한 눈빛으로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 호흡을 맞추며 연륜을 과시했다. 손짓 한 번, 눈짓 한 번에 객석이 들썩였다. '오페라의 제왕' 다운 맑은 음색이 가을밤을 낭만으로 물들였다.


1부는 오페라 '발퀴레'의 '겨울폭풍은 달빛에 사라지고',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조국의 적',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울어라 눈물들이여',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 등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한 선곡이 이어졌다. 섬세하게 자아낸 음표의 항연이 이어졌지만, 다소 명료하지 못한 음향 때문인지 도밍고는 물론이고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의 목소리에서도 풍부한 성량을 느낄 수 없었다.

인터미션 사이 음향이 수정된 듯, 뮤지컬 프로그램을 곁들인 2부에서는 1부에 비해 훨씬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OST 메들리를 시작으로 도밍고는 마르티네즈와 함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오늘 밤'을 가창했다. 한복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임영인은 '강건너 봄이 오듯' '보리밭'을 열창해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했다.

이어지는 오페라 프로그램에서는 섬세한 도밍고의 연기력이 빛을 발했다. 오페라 '사랑의 속삭임'의 '이제 행복한 시간들', 오페라 '장미꽃다발' 중 '나는 일터에 오랫동안 있었어요' 등의 노래에 곁들인 풍부한 표정 연기가 전광판을 통해 관객들의 눈길을 고스란히 사로잡았다. 특히 오페라 '아프리카의 듀오'의 '내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해주세요'에서는 도밍고와 마르티네즈 두 사람의 새침한 연기가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도밍고의 어머니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추천해 준 곡이라는 오페라 '놀라운 일' 중 '사랑, 내 삶의 모든 것'을 끝으로 2부의 막이 내렸다. 이어진 앙코르에서 도밍고는 무려 5곡을 부르며 본 공연 못지않은 넘치는 에너지를 과시했다. '베사메무쵸'의 첫 소절을 듣자마자 관객들은 기립으로 화답했다. 그가 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기자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들을 법한 '떼창'이 이어졌다.

마지막 곡은 한국 관객들을 위한 도밍고의 특별한 선물로 꾸며졌다. 직접 무대 위로 보면대를 들고 올라온 도밍고는 턱시도 위에 옥색 쾌자를 입고 등장했다. 마르티네즈는 붉은 장미가 수 놓인 흰 드레스 위에 붉은 쾌자를 걸쳤다. 두 사람은 임영인과 함께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도밍고는 악보를 직접 들고 노래를 부르며 임영인의 멜로디 위에 단단한 화음을 쌓았다. "그리운 만이천봉"이라는 가사가 도밍고의 입에서 명료하게 흘러나오자 7000명의 관객들이 환호했다. 여전히 청춘인, 그래서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170분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P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