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종잡을 수 없다. 연기, 영화 연출, 작곡, 회화 등 다방면에서 제법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고 있는 구혜선(30). 그의 세계는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기 어렵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다양한 통로를 통해 발산하는 그의 재기는 언제나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 행보는 좀처럼 대중의 '인정'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본업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얼굴 예쁜 여배우가 자신만의 세상에 도취돼 가지치기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식의 비판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이다. 달갑지 않은 평판을 감수해가며 그는 왜 묵묵히 제 욕망을 좇으려는 것일까.

구혜선을 최근 그의 소속사인 서울 합정동 소재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구혜선은 최근 세 번째 장편영화인 '다우더'를 내놨지만 이번 역시 칭찬보단 따가운 질책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구혜선은 영화에서 어긋난 모정으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의 기준을 딸에게 강요하고 학대까지 서슴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담았다. 영화는 꽤 매끄러운 만듦새를 갖췄지만 화법이 작위적이고 감상에 치우쳐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며 완성도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진 못했다. 또 애초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나 1만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수에 이름값을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에 그가 감독으로선 좀더 내공을 쌓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시각도 뒤따랐다.

그래서 그에게 이런 반응이 신경 쓰이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구혜선은 "나쁘지 않다"며 되려 웃었다. 구혜선은 흔들림 없이 차분한 말투와 미소로 일관하며 "지금 풀어야 할 에너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나중에 해도 되지 않겠냐고 해요. 그런데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다 다르잖아요. 그걸 써야 할 때 풀지 않으면 부작용도 분명 있는 거고요. 저 지금 와서 첫 영화 다시 찍으라 하면 억만금을 줘도 못해요. 20대 때 나오는 엄한 치기도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그걸 참았다가 40~50대가 돼서 푸는 이들도 있겠지만 제 에너지는 그땐 노쇠해질 것 같아요."



"어설프고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워도 괜찮을 나이"인 20대를 지나 30대로 접어든 지금 구혜선은 "부족할지라도 그저 꺼내야 할 때 내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안하고 완숙하지 못한 결과물이라 해도 말이다. "완숙해졌다고 40대에 작품을 내놨는데도 우스울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얘기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완성된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완성된 무언가로 흥행 대박을 터뜨리거나 1등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1등을 안해본 사람이 99%예요. 오로지 한 명만 할 수 있는 건데 대리만족에 동요돼 그것을 찬양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1등을 해봤지만 남는 건 두려움뿐이더라고요. 전 그냥 구경할래요.(웃음)"

구혜선은 오랜 기간 깊이 사유한 끝에 나올 법한 철학이 담긴 고집을 계속해서 전했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른 거라 생각해요. 저를 부정하시는 분들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요. 그렇다고 그 분들을 어떻게 하면 내 편으로 만들까 고민하기 시작하면 산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제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의 말은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완고한 의지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렇게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며 입을 뗀 구혜선은 "20대 시절 대학교를 포기하고 연기를 시작했을 땐 말로는 '연기자가 정말 되고 싶다'고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땐 그냥 돈이 없었고 일을 해야 했던 현실에 맞닿아 있었다"고 말했다.

"열등의식, 저라고 없었겠어요? 난 누구 때문에 안된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이 20대의 절 많이 방해했죠. 그런데 거기서 벗어나고 나니 두려운 것도 없고 시간은 온전히 제 것이 됐죠. 되려 누군가는 '네가 돈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돈은 20대 때 많았어요. 훗날 아이와 가족이 생긴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싱글 라이프인 현재로선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생활이 가능한 거죠."



구혜선의 이런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사색에서 출발됐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면 주위에선 '우울하다. 왜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하는데 절대 우울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평생 살 거라는 이상한 희망이 있으니 죽음이 앞에 닥치면 감당할 수 없게 힘든 거라 생각한다"며 "죽음을 고민하면서 더 잘 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혜선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리다 보니 비로소 다른 것이 보였고 채워지는 시간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영화에 죽음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가치관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별을 잘하고 싶다"는 구혜선은 그렇기에 더욱 현재를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전 부지런하지 않은 편인데, 과거엔 쉬어도 될 때조차 일하는 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차피 일이 제대로 안되는 날은 쉬려고 노력해요. 멍 때리는 시간도 주고 단풍도 보고요. 그런데 다들 그걸 나이 들어서야 하잖아요.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조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