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강다영 기자]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은 정웅인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정웅인이 ‘너목들’에 출연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캐스팅 계기는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이었다.

“‘너목들’을 연출한 조수원 감독님이 ‘청담동 앨리스’ 연출 이후 처음으로 본 영화가 ‘전설의 주먹’이래요. 이 영화에 나온 저를 보고 캐스팅을 했다더라고요. 하지만 감독님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가 악역을 맡았을 때 시청자들의 공감대 형성에 있었어요. 감독님이 고민 끝에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사실 정웅인은 ‘전설의 주먹’ ‘너목들’ 이전에도 꾸준히 악역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까인’ 이유는 이전에 구축되어 있던 코믹 이미지 때문. 이에 그는 ‘너목들’의 인기요인으로 ‘분노’를 꼽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동안 악역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박혜련 작가도 ‘너목들’이 복합장르인 탓에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였다고 들었어요. ‘너목들’의 흥행은 저의 응집된 분노와 박혜련 작가의 필력, ‘청담동 앨리스’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조수원 PD의 연출력이 뭉쳐 이뤄낸 결과라고 봐요. '주변을 초토화했다’ 정도로 표현하고 싶네요”

‘너목들’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독특한 설정이 많았다. 정웅인은 그중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공구상 신’을 꼽았다. 공구상에서 살인에 사용할 밧줄, 스패너 등을 구매할 때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듯 바구니에 담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또 어춘심(김해숙 분) 살해장면을 꼽았다. 먼저 진행된 촬영에서 디테일이 살아있는 김해숙의 연기에 압도당한 그는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동선을 활용해가며 일부러 더 하고 싶은 대로 연기를 했고, 그 결과 김해숙에게 “역시 정웅인도 배우야”라는 칭찬을 듣게 됐다.

이쯤에서 17회에 등장한 ‘에어매트 신’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중 민준국(정웅인 분)이 박수하(이종석 분)를 붙잡고 옥상에서 함께 투신하는 장면에서 에어매트가 등장한 것.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상황에서 허를 찌른 반전이었다. 정웅인은 처음 대본을 통해 이 장면을 접하고 든 생각이 ‘죽진 않는구나. 18회에도 나오는구나’였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으로는 ‘왜 안 죽였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죽으면 수하도 죽었을 테죠. 그 장면을 대본으로 처음 접하고 해피엔딩일 거라 예상했어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병원에서 자살을 택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는데 18회 차관우(윤상현 분)와의 대화에서 ‘우리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인 것 같아서요’라는 대사를 내뱉어요. 이 대사를 통해서 민준국이 그동안 품고 있던 한을 대변해준 것 같아요. ‘우리’라 표현했던 가족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민준국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우리’가 없었던 거죠. 이 장면에서 굉장히 울컥했어요”

정웅인이 ‘너목들’에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배우를 꼽자면 단연 이종석일 터. 그와의 호흡은 어땠냐고 묻자 “이종석이랑은 호흡밖에 없었어요”라고 대답해 웃음을 안겼다. 극 중 장혜성(이보영 분) 납치장면에서 “이렇게 우리가 서로 얘기를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인가?”라는 대사를 “우리가 서로 이렇게 만나서 대사를 해본 게 처음인가?”라고 바꿔 말할 정도였다고.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각오가 남달랐어요. 저한테 ‘남의 생각을 읽는 순간에 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고개를 까딱인다거나 눈으로 놀란 연기를 한다든가 이런 포즈를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는데 알아서 포즈를 잘 잡더라고요”

또 정웅인은 이종석이 얼굴만 잡혀 멱살을 잡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도 굳이 멱살을 잡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밝히며 “상대에게 실례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연기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앞으로 몇 년은 더 잘될 것 같아요”라고 그를 칭찬했다.



정웅인은 민준국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변화를 꾀하진 않았다. 그 흔한 애드립조차 넣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에 굉장히 놀라워하자 그의 기준에서 대본을 지키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답했다.

“대사를 바꾸면 편하긴 하겠지만 애드립을 생각하기 전에 대사를 보면서 ‘왜 이 조사로 마무리했을까’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글을 제 입과 혀에 단련시켜서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정웅인이라는 배우가 재조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연기배경에는 늘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자리했다. ‘오작교 형제들’ 이후 연극만 해오면서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였고 이에 대출까지 받아야 했지만 쉬이 작품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자다가 문득 깨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내심 그 작품을 할까 싶기도 했지만 언제나 부인과 상의한 끝에 신중하게 작품을 결정했다고. 결과론적이긴 하나 그 덕에 ‘너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극중 박수하처럼 초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으냐는 질문에 단숨에 ‘미래 연기 트렌드를 보고 싶다’고 답할 정도로 연기에 푹 빠져있었다. ‘너목들’이 복합장르의 유행을 불러왔듯 연기 부분에서 복합적인 트렌드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한편으로는 예능 대세에 치우쳐 준비돼 있는 배우들을 캐내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수원 감독이 저를 캐스팅했듯이 빛을 볼 수 있는 배우들이 많았으면 해요. 지금도 잔물결처럼 존재하는 내공이 있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시간을 까먹는 배우가 아니라면 그들을 캐스팅해서 기회를 줬으면 해요”

정웅인은 자신의 2013년 상반기를 ‘너의 연기력 인정의 목소리가 들려’라고 정의 내렸다. 그의 말대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너목들’ 이후 예능 프로그램과 여러 작품의 러브콜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자신의 연기원동력으로 ‘헝그리 정신’을 꼽은 그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배역에 더 몰입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더 괴롭힐 전망이다. 지금까지 연기 면에서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던 그이기에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감이 실린다.



[티브이데일리 강다영 기자 news@tdaily.co.kr/사진=방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