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강다영 기자] 말하면 죽일 거다. 공포스러운 이 대사를 만인의 유행어로 만드는 배우가 있다.

지난 1일 상반기 최대 화제작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가 18회로 종영을 맞았다. 이 드라마로 많은 배우들이 빛을 발했지만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다. 이유 있는 악역이자 비운의 악역, 정웅인이다.

이제 사람들은 정웅인의 미소를 봐도 ‘너목들’ 민준국의 미소를 떠올린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그는 미소와 함께 ‘세 친구’ 때를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러 번 악역에 대한 갈증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이 정도의 인기를 예상하진 못했단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제가 웃는 것도 무섭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인기는 지나가는 것이지만 연기력은 검증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너목들’로 정웅인이라는 사람이 연기로 남게 됐고, 기존의 이미지를 희석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정웅인은 그동안 ‘오작교 형제들’ ‘선덕여왕’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굉장히 다양한 배역을 맡아온 배우다. 이와 동시에 ‘두사부일체’와 ‘돈텔파파’ ‘세 친구’ 속 캐릭터로 코믹한 이미지에 갇혀있던 배우이기도 하다. 이에 정웅인은 “시청률과 관객 수가 역할을 만드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완벽히 분장해도 대중이 외면하면 캐릭터 구축이 힘들잖아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함과 위트로 점철된 그가 굳이 악역에 대한 욕심을 품은 이유도 이에 관계된다. 이날 인터뷰에서 ‘악역 예찬론’을 펼친 정웅인은 외모와 연기, 분위기 3박자가 어우러진 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꼽으며 ‘나 같은 놈이 인정받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악역을 맡나’ 하는 생각마저 했다고 전했다.

“악역이 가진 매력이 매우 커요. 시대적으로 다들 힘들고 생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이럴 때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는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되려 이 상황에서는 주인공들을 파탄으로 이끄는 인물이 필요하다 싶었죠. 평범한 연기를 하기보다는 이유 있는 악인이라면 매력적이지 않을까, 그런 것에 대한 갈증이었어요. 사실 이유 없는 악역이라도 맡아보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어요. 하지만 제가 악역을 구축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은 없어요. 그저 현명하게 연기하려 애썼고 시청자들이 저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너목들’ 민준국 캐릭터의 인기는 실로 가늠하기 힘들다. 온라인상에서 캡처와 편집 동영상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고 어느 기사를 읽어도 최고 공감 댓글에는 ‘~하면 죽일 거다’가 꼭 있다. 심지어 어느 공공장소의 정수기에는 ‘물 흘리면 죽일 거다’라는 문구와 함께 정웅인의 사진이 붙어있을 정도. 40대에 접어든 그는 기분 좋았던 댓글로 ‘연기 개쩔어’ ‘개그맨인 줄 알았는데’ ‘연말에 상 줘라. 상 안 주면 죽일 거야’ 등을 꼽아 웃음을 자아냈다.

“조재현 선배가 ‘너목들’을 보지는 못했는데 주변 사람들 반응에 놀랐나 봐요. ‘네가 주인공이라며?’라고 말하면서 ‘얘 이제 뜨는 거야?’라는 표정이더라고요. 최근 드라마 출연 중인 배종옥 선배도 그런 반응이었어요. 친구 장현성은 저에게 ‘그래, 역시 주변 사람들 다 죽었어. 네가 다 죽이는구나. 역시 우리의 존재감은 보여줄 필요가 있어’라며 장문의 편지를 보냈어요. 이후에 ‘결혼의 여신’을 보니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하하.”

“인터넷의 파급효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선덕여왕’ 때 미실의 동생 미생을 연기하면서도 느꼈지만 이번 열풍을 겪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연락 안 하던 사람들도 캡처를 보내줘요. 이런 걸 만드는 건 학생들이잖아요. 관심 가져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우리 아이들도 발견하면 막 보여주고 첫째 딸 친구들 엄마들이 보내주기도 해요. 사실 제 나이에 이런 걸 누리기 쉽지 않은데 이례적인 경우라고 봐요.”



코믹의 대가에서 희대의 악역으로 완벽히 변신한 정웅인은 다음 작품도 지금의 악역 이미지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악역으로 안 찾아줘도, 다음 작품 섭외가 들어오지 않아도, 시트콤 캐릭터로 섭외가 들어와도 섭섭할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연이은 악역은 또 한 번 그의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도 있기에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너목들’에 나오는 저를 보면서 ‘주인공 얼굴은 아니고, 만약 주인공을 하려면 성형수술을 해야겠구나’ 싶고. 참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외적인 부분을 바꿔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그런 역할을 맡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의 제 얼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1997년 연극무대에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전향한 정웅인은 그동안 주ㆍ조연을 가리지 않고 수십 편의 작품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맡은 배역보다 아직 맡아볼 수 있는 배역이 더 많다는 그다. 문득 생각난 듯 오연수와 전도연을 꼽으며 서로의 가정을 지켜야 하면서도 애틋한 눈빛을 전하는, 그런 진한 멜로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사투리 연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네요. 영화 ‘밀양’에서의 송강호 선배처럼 독특한 사투리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장인어른이 김천 분인데 김천 사투리는 또 대구랑 다르게 독특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김천 출생의 삼류 건달을 해보면 어떨까요.”



[티브이데일리 강다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방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