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선미경 기자] 배우 김무열(30)에게는 두 가지의 얼굴이 숨어있다. 큰 키에 근육이 붙은 몸에서는 남성미가 풍기지만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을 때는 소년이다. 그의 눈과 무표정에는 고독이 숨어있고, 곰곰이 생각을 하는 모습에서는 진중함이 묻어난다. 보면 볼수록 김무열을 '멋있다'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지난해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김무열은 사실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스타다. 뮤지컬 '쓰릴미' '아가씨와 건달들' '스프링 어웨이크닝' '광화문 연가' 등을 통해 무대에 오른 김무열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 실력도 탁월하다. '뮤지컬계의 동방신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팬을 몰고 다닌다.

그런 김무열이 이번에는 영화 '은교'(감독 정지우)의 소설가 서지우로 돌아왔다. 꽤 파격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김무열은 서지우에 꽤 잘 어울렸다. 소년과 남자, 고독과 순수가 묻어나는 김무열은 복잡한 심리를 가진 서지우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은교'는 10대 소녀의 싱그러움에 빠진 70세 시인 이적요와 스승의 천부적인 재능을 질투하는 제자 서지우의 묘한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 '은교'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박)해일이 형과 다시 한 번 연기한다는 것도 좋았고 서지우 캐릭터에 호기심도 있었죠"

"감독님께 들은 얘기인데 '무열 안에는 소년이 있다'라고 하셨어요. 다 큰 사람 안에 소년이 보인다는 게 재미있고, 영화를 찍으면서는 일반적이지 않아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정지우 감독의 말처럼 김무열은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도 간혹 "부끄럽다"며 두 손을 흔든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에게서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귀여운 애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김무열은 서지우의 복잡한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시나리오와 원작소설을 공부하며 영화에 참여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원작소설을 읽은 김무열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서지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원작은 과정이 많이 나와 있어서 오히려 많은 도움을 줬어요. 시나리오랑 원작 소설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을 많이 공부했어요. 소설에는 서지우가 이렇게 행동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많이 나와 있으니까 전사를 채우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원작 소설을 뗐어요. 공부할 때는 정말 공부하는 것처럼 번갈아가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놓고 감독님과 대화를 했죠. 이미 서지우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서지우가 인간적으로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황에 충실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하고 느낀 덕분일까. 김무열은 '은교'를 통해서 배우로서 잠재된 가능성을 폭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정지우 감독과 박해일의 극찬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은교'에서 김무열이 연기한 서지우는 10년 동안 존경하고 아버지처럼 따르며 모신 스승 이적요의 재능을 질투하며 그의 천재성에 깊은 절망을 느끼는 인물이다. 존경과 질투, 갈망과 열등감, 그리고 욕망이 섞인 서지우는 어쩌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이다.

"캐릭터는 언제나 결과물인 것 같아요. '서지우가 질투감에 휩싸였고...' 이런 걸 어느 순간 잊으면서 연기했어요. 완성된 캐릭터는 내가 연기를 끝냈다고 해서 완성된 거는 아닌 것 같아요. 관객들이 보고 느끼는 게 있으니까 대충 어떤 형상이 나오지 않을까요?"



'은교'는 김무열과 박해일의 만남과 변신, 파격적인 소재 외에도 김고은이라는 신인배우가 캐스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속 김고은은 박범신 작가가 묘사해 놓은 한은교가 소설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처럼 매력적인 배우였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무열의 눈에 비친 김고은은 어땠을까.

"대본리딩 때 처음 만났어요. 먼저 도착해서 커피를 사러 나갔다가 매니저가 '저 배우가 은교야'라고 말해줘서 머리서 봤는데, 처음에는 머리도 짧고 남자앤 줄 알았어요(웃음). 제가 눈이 나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보니까 밝고 긍정적이면서 그 나이 또래와는 다른 느낌도 있더라고요"

김무열과 김고은은 '은교'에서 수위 높은 정사신도 연기했다. 극 중 17세 여고생으로 등장하는 김고은과의 정사신 연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배우들은 왕이었어요. 스태프들이 왕처럼 챙겨줘서 촬영할 때 힘든 건 없었어요. 정말 배려를 많이 해주시고 조심스러워 하셔서. 저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끝나고 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갈망의 마지막 순간을 맛보고 그렇게 된 건데, 촬영이 끝나고 밤에 혼자 있을 때 그게 다 끝나고 나서 서지우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덮쳐오더라고요. 서지우는 외로웠을 수도, 그냥 술이 취해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걸 제3자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느껴지니까 엄청나더라고요. 그때가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영화 촬영뿐만 아니라 촬영 후에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이 작품 '은교'. 그렇다면 김무열은 '은교'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을까.

"저는 관객들이 그냥 '은교'를 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욕망의 끝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이가 들겠지'나 '사람은 정말 외로운 거구나'라는 생각을 해도 되고요. 목적이라고 하면 그런 감정을 드리고 싶어요. 사실 배우로서의 욕심은 연기하면서 다 채웠어요. 이제 은교는 여러분의 것이에요(웃음)"

→②편에서 계속

[티브이데일리 선미경 기자 news@tvdaily.co.kr/사진=방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