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손예진의 새로운 챕터 [인터뷰]
2026. 10.04(일) 09:00
스캔들 손예진
스캔들 손예진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 도전할 때, 배우 손예진의 시간은 가장 뜨겁게 흐른다. 누군가는 익숙하고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할 때, 손예진의 시선은 늘 자신의 낯선 얼굴을 꺼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변화와 도전으로 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의 세계를 넓혀온 손예진이 우리를 또 낯섦과 설렘으로 가득할 새로운 챕터로 초대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연출 정지우)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 조씨부인(손예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이 벌이는 발칙하고도 위험한 사랑 내기, 그리고 그 내기에 얽힌 한 여인 희연(나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손예진은 극 중 조씨부인을 연기했다.

지난 2003년 드라마 ‘대망’ 이후 손예진의 사극을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대중들은 그의 사극을 손꼽아 기다려왔지만, 좀처럼 사극에서 손예진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 손예진이 23년 만에 사극, ‘스캔들’을 선택했다. 그것도 이미 전 세계에서 숱하게 영상화했던, 프랑스 고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말이다. 여기에 지난 2003년 사극영화로 우리나라에서도 한 차례 영상화 했던 그 작품을 23년 만에 도전한 사극 작품으로 선택해 대중의 기대를 모았다.

가채, 한복 등 활동성에 제약이 있는 의상 때문에 손예진은 의도적으로 사극을 피해왔다. 연기 하나만 잘하고 싶어도 힘든데, 거기에 물리적으로 힘든 작업인 사극은 손예진에게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벽이었다. 그렇지만 원작 속 세 주인공의 관계에서 깊이 있게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제안이 손예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손예진이 연기한 조씨부인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인물이다. 재능과 야망의 크기는 그 어떤 사내보다 크고 넓었지만,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제한하는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이 그녀를 가뒀다. 손예진은 “조씨부인은 사랑 내기를 제안하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인간에게 시대가 주는 가혹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여인의 삶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조씨부인의 결은 손예진이 오랫동안 사극을 피해왔던 이유가 도움이 됐다. 다른 의상보다 배는 더 에너지를 써야 했던 한복이 고고하고 정숙해 보이지만 속 마음에는 어떤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조씨부인을 표현하는데 손예진에게 힌트가 됐다. 손예진은 “조씨부인은 사각의 틀에 혼자 갇혀 있는 새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한복을 입는 게 힘들었지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입으로 내뱉는 말과 표정, 눈빛이 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조씨부인을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예진이 표현해야 하는 감정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이, 많은 층위를 만들어내야 했던 감정들이었다. 조원에게 청상과부 희연을 꼬여내라는 내기를 걸면서 짗궃게 웃지만, 그 눈빛은 조원이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욕망하기를 원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보인다.

조씨부인의 감정을 찾아가는 일은 손예진에게 매우 어려웠지만, 또 흥미로운 일이었다. 손예진은 “순간 보이는 차갑기도 하고, 또 정숙한 사대가 부인의 품위도 지켜야 했다”면서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지 않나. 그런 조씨부인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말과 표정이 다르고, 여기에 속마음도 다르니까 저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람이 없어야 했다. 여기에 디테일까지 요구되는 그 고난도 작업을 손예진은 정석대로 한 장면, 한 장면 치열하게 고민하며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정지우 감독과의 대화가 종종 손예진에게 길이 됐다. 손예진은 “감독님은 정확하게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 조씨부인이 무슨 감정인지 물어도 뭐가 정답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면서 “이 여자는 겉으로만 여자이고 안에는 큰 그릇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그 큰 그릇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숨겼을 때 어떤 식으로 그 억눌린 욕망이 삐져나올지 감독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손예진이 찾은 하나의 길은 조씨부인의 비뚤어진 욕망이 결국 상대를 자극시키는 방향으로 발산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왜 조씨부인은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려고 할까 고민했다. 이 인물은 욕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결국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서 삐뚤어져서 인간을 자극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렇듯 낯설고도 복잡한 조씨부인의 내면을 기꺼이 끌어안은 건, 한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손예진의 도전 정신 덕분이다. 대중이 사랑해 준 기존의 이미지에 안주하기보다, 늘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일 때 비로소 배우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손예진은 “변화했을 때 새로운 모습의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거기에서 시청자와 관객분들이 재미있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 정말 큰 희열을 느낀다”면서 “했던 것을 또 반복하는 걸 유독 싫어하는 편이다. 아직 보여드리지 않았던, 내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부분이라도 극대화해서 꺼내 보이고 싶다. 앞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작품이 들어온다면 끊임없이 변신하고 싶다”고 연기에 대한 뜨거운 갈증을 드러냈다.

물론 변신을 향한 열정의 결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20대와 30대 시절의 손예진이 쉼 없이 작품을 하며 연기 안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다면, 이제는 삶과 연기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됐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오롯이 혼자만의 삶이 아닌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게 된 덕분이다. 손예진은 “어릴 때는 일 욕심이 정말 많았고 무조건 작품을 많이 하자는 주의였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일과 가정생활의 밸런스를 어떻게 잘 맞추느냐가 관건이다”라며 “이제는 일하면서 뭔가를 찾아가기보다 일상을 살아가며 축적된 에너지를 한 작품, 한 작품에서 제대로 발산하자는 마음이다. 잘 해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역할들을 하나씩 찾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일상의 단단한 토대 위에서 맞이한 스캔들은 손예진의 25년 연기 인생에 또 다른 분기점이 됐다. 스스로 배우 인생을 결혼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만큼, 40대에 접어든 그의 연기 시계는 한층 더 깊고 묵직하게 흘러가고 있다. 손예진은 “마흔이 넘어가면서 중년의 배우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것들이 한 장씩 쌓여가는 느낌이다”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조씨부인은 내게 새로운 챕터의 시작과도 같다. 기존에 보여드렸던 모습과는 달리, 심리적인 변화가 큰 인물을 내면으로 절제하면서 표현해 내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짚었다.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손예진은 이제 더 넓고 깊은 연기의 바다로 나아갈 채비를 마쳤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들었던 말 한마디는 그가 맞이한 새로운 계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손예진은 “누군가 내게 '예진 씨가 희연이 아닌 조씨부인을 할 나이가 됐네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참 깊게 와닿았다”며 “’스캔들’과 조씨부인은 배우로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시작점이자, 차기작인 버라이어티를 통해 또 다른 변신으로 나아가게 해 줄 매우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마침내 자신의 새로운 장을 활짝 열어젖힌 손예진의 다음 페이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
기사제보 news@tvdaily.co.kr        최하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tvdaily 홈페이지(http://tvdaily.mk.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info@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