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극장가가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빗나간 지 오래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멀티플렉스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올해에도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한국 영화 3편이 극장가를 찾으면서 관객을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만, 극장가 상황은 여전히 쉽지 않다.
물론 올해 추석 시즌에도 텐트폴 및 기대작들이 대거 출격한다. 16일 최민식과 한소희가 호흡을 맞춘 영화 ‘인턴’을 시작으로, 연휴가 본격화되는 23일에는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주연의 ‘암살자(들)’, 한국 범죄오락 대표 프랜차이즈 ‘타짜’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변요한 노재원 주연의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설경구가 뭉친 ‘가능한 사랑’이 나란히 극장가에 출격한다. 이어 30일 구교환 주연의 ‘부활남: 더 레드’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극장가 전반의 위기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과거 극장가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이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극장을 찾는 관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영화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오디세이’가 개봉 당시 반짝 관객이 몰렸던 기현상을 제외하면 평시 관객 수는 처참한 수준이다. 2025년 3월 극장 전체 관객 수는 644만 명에 불과했고, 2026년 4월 비수기 역시 651만 명 수준에 그쳤다. 한 달 전체 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대작 영화 한 편이 동원하는 관객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 극심한 가뭄 현상이 일상이 된 것이다.
연간 관객수 추이를 살펴보면 위기는 더욱 명확해진다. 2024년 극장 전체 관객 수는 1억2313만 명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1.6% 감소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 2억2000만 명을 웃돌던 시절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에 불과하며, 극장 관객 규모 자체가 완전히 축소된 채 정체기에 접어들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관객 수 급감과 정체는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극장 산업의 외형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전국 극장 현황에 따르면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 등 국내 4대 멀티플렉스 체인의 극장 수는 2024년 대비 총 26곳 줄어들며 5% 이상 감소했다.
이러한 폐점 도미노는 2026년 현재까지도 매섭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 9곳이 영업을 종료하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유동 인구가 많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했던 지역의 거점 극장들마저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는 실정이다.
업계 1위인 CGV의 상황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CGV는 지난 1월 경산점, 대구아카데미점, 시흥점, 대구수성점 등을 정리한 데 이어, 8월 19일에는 수도권 핵심 상권 중 하나인 판교점마저 영업을 종료했다.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액 13% 감소와 495억 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고정비 부담이 큰 대형 지점들을 포기한 것이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역시 지난해 10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달인 8월에만 젊은 층의 유동 인구가 풍부한 롯데시네마 합정점과 부평점이 나란히 폐점하며 충격을 안겼다.
메가박스의 사정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3분기까지 155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9월 21일에는 2006년 개관해 20년 가까이 신촌 대학가 문화를 이끌던 상징적인 신촌점이 끝내 영업을 종료했다. 나아가 동대문점까지 30일을 끝으로 문을 닫을 예정이라 도심 한복판 대형 지점들의 줄도산 공포가 현실화되었다.
대형 극장들이 무자비하게 문을 닫으면서 취약계층의 문화 향유권마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장애인석이 설치된 극장 수는 CGV가 189곳에서 172곳으로, 롯데시네마는 127곳에서 120곳으로, 메가박스는 113곳에서 112곳으로 일제히 줄어들며 영화 관람 인프라의 붕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폐점 도미노는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상권에도 직접적인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지난 2004년 개관해 1500석 규모로 20년 넘게 대전 둔산 도심 상권을 지켜왔던 메가박스 대전점마저 최근 임시 휴업에 돌입했다. 관람객 급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영화 소비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꼽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OTT 및 다양한 플랫폼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영화관의 상대적 위상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안방에서도 편안하게 고품질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굳이 비싼 비용과 수고를 들여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멀티플렉스 측은 지난 몇 년간 극장 관람료 인상을 통해 막대한 고정비와 수익성을 보전하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 티켓값에 큰 부담을 느낀 관객들이 비교적 실패 확률이 적은 대작 영화만 극장에서 관람하면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결국 극장 수 감소와 지역 거점 붕괴가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극장 산업은 양적 확장을 멈추고 질적 재편 국면으로 완전히 접어들었다. 당분간 프리미엄관 중심의 재편이나 합병 등 구조조정 논의가 지속될 전망이다. 떠나간 관객의 발걸음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텐트폴 영화 의존을 넘어, 영화 관람이라는 경험 자체의 가치를 재증명해야만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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