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의 ‘버닝썬’, 용기 있는 여성들에 주목하다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2024. 05.21(화)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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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우리가 본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차라리 들추지 말 걸 싶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회의감이 들 만큼 비위가 상하고 말았는데 이를 세상에 알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수없이 들여다보아야 했을 이들은 오죽할까. 무모하고도 거대한, 하지만 타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터.

지난 19일, BBC News 코리아 유튜브에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2019년 한국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클럽 ‘버닝썬’은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만든 곳으로, 당시 온갖 죄악의 온상으로 밝혀지며 큰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이러한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바탕에, 승리를 비롯하여 가수 정준영, 밴드 FT아일랜드의 전 멤버 최종훈 등 비정상적이고 미숙한 성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성범죄가 자리 잡고 있었고. 이들이 다름 아닌, 유명 K팝 가수였다는 사실은 한국 대중의 마음을 더없이 참담하게 만드는 무엇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가진 양, 겁도 없이 활보했는데 실제로 경찰과 관련하여 힘 있는 양반이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실재했던 사건의 모양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는 가장 긴 형량을 받은 정준영까지 출소한 시점에 맞추어, 여전히 별다른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승리를 죄의식 안으로 소환할 겸, 다시 한번 사건을 반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물론 그러한 목적이 아예 없진 않겠다.

하지만 타이틀인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의 진짜 주체, 주요 피해 대상이었고, 대상이 될 뻔한 여성들, 그리하여 연대 의식과 짙은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을 파헤치는 데 앞장섰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효실과 강경윤 기자, 버닝썬의 피해자, 그리고 2019년 세상을 떠난 고(故) 구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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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관둘 수가 없더라고요”
박효실 기자는 2016년 첫 물꼬라 볼 수 있는, 정준영의 일명 ‘몰카’, 연인과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으로 촬영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제보를 듣고 이에 관한 기사를 냈다가, 대대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 두 번이나 유산할 만큼의 고통을 겪는다. 이렇게 진실이 묻히나 싶었지만 3년 후, 정준영의 휴대전화 데이터 사본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강경윤 기자에게 전달된다.

“그 카톡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아픈 느낌이 들어요”
강 기자는 해당 데이터에서 ‘정준영 단톡방’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대화방에 속한 멤버들 간에 주고받은 내용을 상세히 보게 되는데 그중 상당수가 심각한 성범죄에 해당하는 수위였다. 가장 충격적인 건 대화를 나누는 멤버 중에 승리와 최종훈이 있었으며, 이들이 고위 경찰 인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 박 기자의 일을 알고 있기에 그녀 또한 두려웠지만 진실을 알리려 결심한다.

“구하라 씨는 굉장히 용기 있는 여성이었고”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대화 속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던 고위 경찰 인사의 정체다. 도통 알 수가 없어 난관에 빠져있을 즈음, 구하라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온다. 강 기자가 보도하려는 내용이 다 사실임을 알고 있다며 자신이 최종훈과의 친분을 통해 알아보겠다는 것. 이렇게 강 기자는 구하라의 도움을 받아 힘 있는 양반, 고위 경찰 인사의 정체까지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래야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 과정에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부터 나는 당시의 끔찍한 고통을 되짚으며 형사 고발에 나선, 용기 있는 피해 여성들의 힘까지 더해지며, ‘버닝썬’의 범죄자들은 마침내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범죄자 중 일부에 불과하고 마뜩잖은 형량이나, 처벌이 행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보니 그야말로 용기 있는 여성들의 연대가 이룩한 성과다.

그리고 BBC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 모두의 손으로 넘어왔다. 무모하고도 거대한, 하지만 타당한 용기는 여러 사람이 모일수록 감당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법이다. 여전히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버닝썬들, 승리와 정준영, 최종훈을 대표주자로 한, 수많은 추악한 욕망을 가진 이들을 향해 대중이 선고한, 선고할 형량은 이제 막 시작되어야 할 테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etvidet@naver.com, 사진 = BBC News 코리아 유튜브,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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