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부담감을 짊어지고 매 신마다 치열하게 부딪혔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좋은 작품과 연기를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원톱 주연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뜨거운 피'를 완성해낸 배우 정우다.

최근 개봉된 영화 '뜨거운 피'(감독 천명관·제작 고래픽처스)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정우)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정우는 극의 주인공인 희수를 연기했다.

정우가 '뜨거운 피'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누아르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정우는 "이성보다는 본능적으로 이 시나리오에 끌렸다"면서 "내가 누아를 장르를 하면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궁금했다"라고 했다.

부산 사투리와 건달이라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영화 '바람'과 많은 유사점이 있었지만, 정우에게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되려 부산 사투리로 쓰인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해도가 빨랐고,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간결해서 좋았다는 정우다.

다만 희수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는 꽤 많은 공을 들였다. 정우는 "한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작품이다 보니까 희수를 어떤 캐릭터로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톤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러우면서 어깨에 힘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희수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했다"라고 했다.

제작진은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40대 아저씨 느낌의 희수를 원했지만, 정우의 생각은 달랐다. 정우는 "저는 희수가 섹시했으면 했다. 조금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면 했다"면서 "무겁게만 가지 않고 유머가 섞인 캐릭터면 감정이 치다를 때 감정의 증폭이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정우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희수라는 인물은 느낌 자체가 텍스트로 보는데도 불구하고 바닷가 내음이 났다. 희수 자체가 40대 아저씨의 느낌이 강했다. 되려 저는 그런 부분을 걷어내면 어떨까 싶었다. 청춘의 느낌이 들어가고 나만의 희수를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러며네서 정우는 "누아르라고 해서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상적이면서 평범한 모습에서 점점 주변 환경, 배신과 음모로 인해서 점점 변해가는 이 인물을 그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기존에 제가 보여드렸던 연기에서 탈피하기보다는 이질감 없게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톤을 잡았다"라고 덧붙였다.

희수 캐릭터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연기 톤을 잡는 데에도 신경 썼다고. 정우는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조금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톤을 잡는 데 있어서 집중을 많이 했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대사들이 떠보일 수도 있으니까 가벼워 보이지 않게끔 현장에서 했던 대사들을 집중해서 읊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부산을 로케이션으로 한 촬영 장소들이 주는 힘도 대단했다. 1990년대 부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영화의 공간들은 정우로 하여금 치열한 생존 싸움을 거듭하면서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희수의 감정선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캐릭터와 영화에 몰입하다 보니 고향인 부산에서 진행된 촬영 내내 숙소에만 머무르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우는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작품에 몰입해 살려고 하지 않는 편이지만 작품에 따라 다르다. 이번 작품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살고 있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우는 주연으로서 필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부담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정우는 "제가 신인 배우 같으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편안하게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한국 영화가 어려운 시기이지 않나. 예전 같았으면 쉽게 투자를 받았을 배우, 감독들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뜨거운 피'가 제작되기까지 투자 난항을 겪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정우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연기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까지 작품에 몰입했던 건 일종의 주연으로서 필연적으로 가져야 할 책임감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우는 "제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희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원톱인 영화이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가야 할 부담감이 있었다.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들이 끌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주연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투자, 제작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고집스레 스스로 부담감을 짊어지고 '뜨거운 피'를 완주한 정우다. 그런 정우에게 '뜨거운 피'는 가장 큰 성장점을 준 작품이 됐다. 정우는 "'뜨거운 피'의 희수는 이해할수록 굉장히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유독 저를 성장시켜준 작품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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