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배우 김서형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유독 심도가 깊다. '마인'의 정서현 역시 그랬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을 빚어내듯, 온 마음을 배역에 내던지는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그다.

김서형은 최근 tvN 드라마 '마인'(극본 백미경·연출 이나정)을 통해 또 한 번 안방극장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마인'은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그는 재벌 효원가 맏며느리인 정서현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극 중 정서현은 재벌가 집안 딸로, 정략결혼을 통해 효원가 며느리가 됐다.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아들 한수혁(차학연)을 잘 키워내 효원가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는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 사랑하던 여인 최수지(김정화)를 잊지 못하는 인물로 애틋한 동성 멜로를 그려내 화제를 모았다.

지난 몇 년간 김서형은 누구보다 바쁘게 일했다. 드라마 'SKY 캐슬' 열풍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는 "'SKY 캐슬'에서 자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다면, 근래에는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고, 나아가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 지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만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각 작품들의 결은 당연히 다르지만, 결국 배우는 사람을 그려내고 표현해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마인'은 전문직의 여성들, 이 여성들을 단단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가 관건인 작품이었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성공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상을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검사, 변호사 등 그간 해왔던 역할과 결은 비슷했지만, 결국 사람을 그리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했죠."

김서형은 "동서와 형님의 관계, 시어머니를 대하는 두 며느리의 태도 등이 통속극의 뻔한 막장 요소를 연상케 하지만, 대본을 통해 본 '마인'에서는 그런 지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통속극일 수 없었다"라며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캐릭터로 풍자한, 결국은 사랑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요소는 있었지만 결국은 착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극 중 최수지와의 동성 멜로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도라고 놀라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멜로라고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내게 왔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연 결정을 했다"라고 밝혔다.

김서형은 최근 몇 년 간 그 어떤 배우보다도 열심히 일하며 걸출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눈부신 성공이었지만, 성공을 쌓아가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났다고 했다. 김서형은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 소시오패스 역할로 특별 출연을 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캐릭터에게 아무런 서사가 없다는 점이 너무 힘들더라. 내가 캐릭터를 너무 실제 사람의 형상으로 그리려 하는 건 아닌지, 그냥 작품 속 캐릭터는 대로 둬야 하는 건지 고민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스카이캐슬'의 출연 제안을 받았고, 악역 같은 연기를 펼쳐야 하는 김주영 선생 캐릭터가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었단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심기일전해 작품과 부딪힌 결과, 김주영은 그의 '인생 캐릭터'가 됐다.

"김주영을 연기하면서 당시에는 나름의 숙제를 좀 풀었다고 생각했었어요. 주변의 환호성도 들렸고요. 그런데도 제 안에 의문이 남아있었죠. 쉬지 않고 영화 '여고괴담', '아무도 모른다'에 출연한 이유도 그래서예요. 온몸의 힘을 소진한 것 같은 기분으로 연기를 하니까 조금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인'도 결국 사람 이야기를 들여다 보고 사람 냄새가 나게 해야 하는 작품이니, 이런 고민들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거죠."

김서형은 '마인' 속 캐릭터들이 진정성을 얻고 힘을 기르면 정서현과 동서 서희수(이보영)가 연대해 나가는 과정과 관계가 시청자들에게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단다. 동성애자 설정을 바탕으로 멜로에 집중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고, 언제 또 이런 이야기를 연기해보나 싶었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시청자들이 재미있으면 보시고 아니면 채널을 돌리시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저 대본 속 감정선을 파악하고 설정해두고 집중해 연기를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드라마 속 정서현은 결국 효원가를 지키고 자신만의 마인을 찾았다. 그렇다면 김서형의 '마인'은 무엇일까. 그는 "배우로서의 마인은 그때그때 만나는 작품들이다. 작품을 하나 만나면 짧게는 5개월, 길게는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그 대본, 책에 푹 빠진다. 작품 속 대사 하나하나가 정말 좋고 그런 글귀들로 인해 나도 자꾸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인간 김서형에게는 특별한 '마인'이랄 것이 없다는 그다. 그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퇴근이 늦어지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평범한 일상이 전부라며 "그 속에서 주위 사람들을 마주하고 관찰하는 버릇을 들였다"라고 말했다. 결국 김서형의 모든 일상과 사고는 돌고 돌아 연기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는 설명이다.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닦으며, 오롯이 연기 만을 보고 달리는 외길 인생이다.

"더 이상 순진하지는 않지만 순수하려고 노력하고, 초심을 기억하려 해요. 어릴 때 상경해서 혼자 고생했던 시절, 왜 배우가 됐는지를 계속 생각하려 하죠. 지금의 풍요를 만끽하면 연기가 잘 안될 것 같거든요. 결국 그 피곤함과 성실함이 저 만의 '마인'이라는 생각이에요. 이걸 배신하지 않아서 지금의 배우 김서형이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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