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믿음과 불신을 독창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등장했다. 이옥섭 감독의 영화 ‘메기’의 이야기다.

영화 ‘메기’ (감독 이옥섭•제작 2X9HD)는 어느 날 갑자기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민망한 19금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되고,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싱크홀이 등장하는 등 예측불가한 상황 속 인간의 믿음을 발칙한 상상으로 그려낸 펑키 코미디다. 작품에서 이주영은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인 줄 아는 윤영 역을, 문소리는 병원의 부원장 이경진 역을 맡는다. 구교환은 윤영의 연인 성원 역을 연기한다.

믿음과 신뢰라는 주제에 발칙한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메기’는 독립영화답게 파격적인 연출이 잇따랐다. 영화는 극의 아주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메기라는 물고기를 통해 인간이 아닌 제3자, 동물의 입장으로 인간 사이의 문제들을 꼬집고 재조명한다. 메기 목소리는 배우 천우희가 맡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이옥섭 감독은 카메라 앵글에도 다양성을 줬다. 영화는 카메라를 아래에 두고 위를 바라보며 배우를 찍는 로우앵글, 과도한 클로즈업 등 다양한 촬영 방식을 사용했다. 특히 이옥섭 감독은 구석에서 방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CCTV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이러한 연출은 병원에서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윤영을 누군가 몰래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더불어 이옥섭 감독은 영상을 되돌리거나, 대사를 살짝 바꾸는 등의 연출을 통해 한 가지 장면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극중 이경진 부원장은 병원 홍보용으로 사용할 광고 영상을 촬영한다. 이에 이경진 부원장은 자신이 오랫동안 동물 보호단체에 기부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릴라를 보호 상자로 인도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 가운데 이경진 부원장은 고릴라를 다루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동물 보호소 직원 같다”고 칭한다. 반면 광고를 촬영하는 감독은 오히려 “밀렵꾼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결국 홍보 영상은 거꾸로 돌려져 이경진 부원장이 고릴라를 보호 상자에서 탈출시키는 것처럼 연출되고, 그가 고릴라와 함께 미소를 짓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이처럼 이옥섭 감독은 사람의 선택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선에 대해 고찰했다. 이를 통해 각자 자신이 가진 믿음에 따라 범할 수 있는 시선의 오류를 유쾌하게 꼬집는다.

믿음에 대한 질문은 주인공인 윤영에게도 부여된다. 윤영은 다른 이도 아닌 제3자, 성원의 전 여자친구에게 충격적인 폭로를 듣는다. 성원이 전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것. 이에 이경진 부원장은 “솔직하게 물어봐라”고 조언하지만, 윤영은 직접 성원에게 사실관계를 묻기보단 의심을 점차 키워간다. 이런 까닭에 윤영의 눈에는 성원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성원은 일용직 근로자이기에 항상 새벽에 출근한다. 평소엔 이런 성원을 다정하게 마중하던 윤영이지만, 의심이 커진 탓에 “이 밤중에 어딜 가냐”며 소리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깨지기 시작한다. 윤영은 사사건건 성원을 의심하고, 영문을 모르는 성원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윤영에게 조언을 하는 이경진 부원장도 매한가지다. 그는 유년 시절 친구에게 배신당한 기억에 아무도 믿지 못한다. 이어 젊은 남녀가 성관계를 나누는 모습이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되자 윤영을 가장 먼저 의심한다. 그러나 병원의 직원 모두가 아프다며 결근하자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아픈 직원을 걱정하기보단 “아프긴 무슨, 병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게 창피한 일이냐”고 역정을 내며,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메기의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시선이 왜곡되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사실처럼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옥섭 감독은 재개발,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청년 취업난, 싱크홀 등 현실 속에서 볼법한 다양한 소재가 등장시켜 현실을 풍자했다.

재개발을 앞두고 파란 천막이 펼쳐진 곳에서 마치 여름 피서를 떠난 듯 수영복을 입고 활보하는 시민부터, 싱크홀을 메우기 위해 새벽부터 “국가는 처치 곤란한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직장”이라며 출근하는 성원의 모습까지. 이옥섭 감독은 이 시대 청춘의 고민들을 영화 곳곳에 유머스럽게 풀어냈다.

특히 이옥섭 감독은 성(性)이라는 주제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눈살이 찌푸려지기보단 웃음이 났다. 영화에선 남자의 중요 부위가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이를 자신의 몸에 대보며 “내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등 가벼운 유머를 선사하며 관객의 폭소를 자아냈다. 관객처럼 극중 환자들도 이 사진을 보며 “누구의 몸이냐”고 낄낄거린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래 찍은 범인이 누구냐”곤 묻지 않는다.

또한 이 사진의 주인공이 윤영인 줄 아는 이경진 부원장은 “연락드릴게요”, “뒷문으로 나가세요”라며 피해자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이렇듯 이옥섭 감독은 데이트 폭력, 남자친구를 믿지 못하는 연인, 몰래카메라, 피의자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정체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꼬집으며 관객의 뼈를 때린다.

유쾌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메기’다. 이옥섭 감독이 그려낸 현실보다 현실 같은 블랙코미디가 관객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는 26일 개봉한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메기'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