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드디어 이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다. 삼성반도체 근무 중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故) 황유미 씨와 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투쟁하는 아버지 황상기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감독 김태윤 제작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에이트볼 픽쳐스)이다.

대기업의 아킬레스건을 다루는 민감한 영화인 탓에 투자가 난항을 겪어 개인 투자자들의 후원과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만들었으나 상식적인 수준의 개봉조차도 쉽지 않다. ‘그들’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상구(박철민)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의 딸 윤미(박희정)는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기업 공장에 취직한다. 그러나 윤미는 입사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백혈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났던 딸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자 상구와 가족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결국 차갑게 식어버린 윤미의 손을 잡고 상구는 약속한다. 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또 하나의 약속’은 사건의 실체를 시원하게 고발하기보단 한 가족에게 닥친 뜻밖의 큰 아픔을 가족애로 견뎌내는 휴머니즘에 무게를 둔다. 세상을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각종 유혹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아버지의 뜨거운 진심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대중영화로 소구되고자 한다. 사건의 진실에 더 다가가자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장르로 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독도 이 영화는 ‘극영화’라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사건의 내용을 더 잘 알고 싶다면 그동안의 보도들을 보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건의 진실을 소홀히 다루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대기업의 편에 서서 비상식적으로 이용되는 과정과 이로 인해 한 가족이 붕괴해가는 모습을 사실에 근거해 충실하게 담아낸다. 관객들은 한 가족의 슬픈 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시다가도 이 비극에 관여된 어느 집단의 이기심에 분노하길 반복할 것이다.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박철민은 딸을 잃고 불의와 투쟁하는 아버지의 설움과 한을 주름의 깊이에 담아 아프게 전한다. 고통을 논리적으로 내뱉기보단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인물의 뜨거운 눈물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또 고인을 연기한 박희정은 피해자의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삭발까지 감행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특히 극중 영정사진 속 그의 한 서린 표정은 영화를 본 뒤에도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이밖에 딸의 죽음을 가슴 속에 묻어야 하는 어머니를 사실적으로 연기한 윤유선과 열혈 노무사로 분한 김규리를 비롯 이경영, 정진영, 김영재, 정영기, 유세형 등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감독은 “다시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권리를 공평하게 인정받고 상식과 합의가 통하는 세상을 향한 바람. 이를 간절하게 원하는 1만여 명의 힘이 모여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 수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건강한 세상으로의 변화를 외치고자 한다.

[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올(OAL)]